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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통해 세상읽기] 吾舌尙在(오설상재:내 혀가 아직 살아 있다)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합종연횡으로 나뉜 中 전국시대

列國 외교서 '사유 실험' 빛발했듯

남북·북미 정상회담 앞둔 한국도

모든 가능성 열고 대화 임하기를





최근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먼저 스포츠 방면에서 평창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스포츠 강국의 위상을 드높였다. 아울러 정부는 외교 능력을 발휘해 오는 4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5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이끌어내 북핵 위기를 완화했다. 두 가지 사안은 우리나라의 품격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같은 역할을 했지만 특성상 상당히 다른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자는 이미 개인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한 페이지로 바뀌고 있다. 반면 후자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며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자는 선수들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실력을 발휘해 누구든 결과에 승복하기 마련이다. 후자는 서로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 외에 어떠한 규칙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후자는 전자보다 더 많은 유동성을 지니고 있다. 즉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판이할 수 있다.

전국시대 약육강식의 엄연한 국제정세에서 자기 보존을 위해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많았다. 그중 소진과 장의로 대표되는 종횡가(縱橫家)는 한 나라가 어느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국운이 좌우된다는 ‘택교(擇交)’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택교는 오늘날의 ‘외교(外交)’에 해당하는 말이다. 약소국이 홀로 강한 적을 상대할 수 없을 때 이웃과 동맹 관계를 맺어 불리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다. 지금까지 한 나라는 오로지 자국의 힘으로 치열한 경쟁의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종횡가의 등장으로 외교적 능력은 자국의 물질적 전력 못지않은 중요한 자산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소진과 장의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외교의 중요성을 역설했지만 늘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장의는 초나라에 유세하러 갔다가 당시 재상이던 소양과 술을 마시게 됐다. 장의가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연회 도중 소양이 애지중지하는 옥을 잃어버렸다. 참석자들은 다들 장의가 옥을 훔쳤으리라고 혐의를 뒀다. 소양은 장의를 붙잡아 수백 대의 매질을 하며 훔쳐간 옥을 내놓으라고 고문했다. 장의가 혹독한 매질에도 자복하지 않았고 결국 풀려나게 됐다.

장의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혐의를 뒤집어쓰고 집에 돌아오게 됐다. 아내는 만신창이로 돌아온 장의를 걱정했지만 장의는 오히려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보이오(視吾舌尙在不·시오설상재부)”라고 물었다. 아내가 혀에 이상이 없다고 하자 장의는 “그럼 괜찮다”며 아내를 위로했다. 이로부터 ‘오설상재(吾舌尙在)’는 세 치의 혀로 국제 관계를 쥐락펴락하던 종횡가의 언변을 상징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됐다.



종횡가는 유세를 펼칠 때 상대에게 자신들이 파악하는 국제정세를 먼저 이야기한다. 상대가 자국의 상황에 빠져 전체를 바라보지 못할까 염려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상대가 스스로 우쭐해하면 단점을 부각시키고 상대가 불안해하면 장점을 강조해 사고의 균형을 잡게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사례와 현재의 성공을 제시하며 자신들이 제안하는 대로 진행하면 상대가 원하는 최적의 결과를 거둘 수 있는 구체적 제안을 던진다.

종횡가의 제안이 현실에서 늘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들은 현실을 인정하고 약하면 약한 대로, 강하면 강한 대로 외교 관계로 귀신처럼 생존의 길을 찾아냈다. 아마도 그들이 전례와 선입견에 얽매이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상상하는 사유 실험에 탁월했기 때문에 당시 현실을 주도하는 흐름에 동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도 무엇을 어기면 안 된다고 금기를 설정하거나 성공 가능성이 낮다고 예단을 품는다면 상대에게 보일 수 있는 패가 자동적으로 줄어들게 돼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히게 된다. 종횡가의 활약상이 담긴 ‘전국책’을 읽는다면 세 치의 혀로 냉혹한 국제 관계를 풀어나간 사유 실험의 지혜를 캐낼 수 있으리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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