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변호사협회장 집무실에는 큼지막한 버킷리스트가 걸려 있다. 리스트에 담겨 있는 항목은 모두 98개. 김현 협회장은 이 가운데 12개를 국회를 통해 법안으로 발의했다. 그는 남은 임기 6개월 동안 나머지 리스트를 해결하기 위해 매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직 체크하지 못한 리스트에는 법무담당관 파견, 징벌적손해배상제 확대, 민사소송 인지대 감액, 판결문 공개 등 국민의 권리 강화를 돕는 법안이 담겨 있다. 김 협회장은 “임기 초부터 내세웠던 버킷리스트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이어 “리스트 중에서도 법무담당관 제도는 꼭 입안되도록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법률가 수가 적어 결과적으로 법치 행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김 협회장은 “지자체는 조례를 잘 만들어야 법과 상충하지 않고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며 중앙정부나 지자체의 변호사 채용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패소 비용을 지적했다. 정부나 지자체가 소송을 진행할 때 법률 전문가가 없다 보니 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패소 비용은 국민과 주민의 혈세로 지불된다”며 “변호사 2만5,000명 시대를 맞아 가용자원이 많은 만큼 법무담당관을 두더라도 많은 예산이 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소비자 권익 보호에도 책임감을 갖고 있다. 지난해 3월 변협은 징벌적손해배상을 도입한 제조물책임법 개정안을 건의했고 국회에서 통과됐다. 그는 “최근 BMW 차량의 잇단 화재 사건으로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이 법조계의 화두”라며 “실손해 배상 제도를 고수하면 BMW 화재 사건이나 가습기 사건 피해자들의 손해를 제대로 배상할 수 없으므로 징벌적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가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지대 감액을 주요 내용으로 한 ‘민사소송 인지법 개정안’도 김 협회장이 심혈을 기울이는 법안이다. 그는 “민사소송 인세가 높아지면 소송을 할 수 없는 국민이 생긴다”며 “법원 편의와 국민 이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으면 안 된다는 입장이다.
준법지원인 제도 활성화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현재 변협에서는 준법지원인 선임 대상 회사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 협회장의 목표는 준법지원인 제도를 모든 상장기업에 적용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전관예우 근절에 대한 의지도 피력했다. 김 협회장은 “미국의 시니어 법관제는 퇴임 법관이 월급의 70%를 받고 비상근근무를 하는 것”이라며 “최근 조재연·김선수 대법관 등이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해 점차 이런 인식이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버킷리스트에 담긴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매일 국회의원을 만나 설득하는 작업을 1년 이상 반복해오고 있다. 이날도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바쁘게 국회로 이동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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