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NH투자증권(005940)의 인사가 증권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3연임을 노렸던 김원규 전 사장 대신 투자은행(IB) 부문을 이끌던 정영채 부사장이 대표에 오른 것. NH증권은 정 대표의 지휘 아래 5월에 단기금융업을 인가받으면서 초대형 IB로 발돋움했다. 2017년 11월 발행어음 판매를 시작으로 초대형 IB 1호에 이름을 올린 곳은 한국투자증권이었지만 ‘전통 IB맨’을 정점으로 조직을 꾸린 것은 NH증권이 처음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연말까지 이어졌다. KB증권이 IB 출신인 김성현 대표를, 한투증권도 정일문 대표를 새로운 수장으로 앞세운 것이다. 미래에셋대우도 최근 IB통인 조웅기 부회장과 김상태 IB 총괄부문 사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증권 업계에서는 초대형 IB 출범 이후 IB맨들이 지휘봉을 잇따라 잡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증시 부진과 함께 IB 부문의 수익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초 3,000선을 넘보던 코스피가 2,000선이 무너지는 등 전통적 수익원인 위탁매매(브로커리지)만으로는 돈을 벌기 힘든 상황이다. 실제 IB 부문 성적표로 증권사의 희비가 갈리고 있다. 한투증권은 약세장인 3·4분기 당기순이익 1,236억원을 거두면서 미래에셋을 제치고 1위에 올라섰다. NH증권도 1,047억원의 순이익을 올렸다. 3·4분기 누적으로도 한투증권(4,109억원)과 NH증권(3,498억원)이 미래에셋(4,343억원)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가히 IB 전성시대다.
문제는 초대형 IB 출범 1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쪽짜리’라는 점이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으로 초대형 IB 자격을 갖춘 증권사는 한투증권과 NH증권을 비롯해 미래에셋대우·삼성증권·KB증권 등 5곳이다. 하지만 발행어음을 파는 증권사는 한투증권과 NH증권 두 곳뿐이다. 이렇다 보니 3·4분기 누적 증권사 발행어음 잔액도 4조8,054억원(한투증권 3조4,472억원, NH증권 1조3,582억원)에 불과하다. 발행어음은 초대형 IB가 자체 신용으로 어음을 발행해 일반 투자자에게 파는 금융상품이다.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증권사가 당국으로부터 단기금융업 인가를 받아야 판매할 수 있는 신규 사업으로 IB의 핵심 사업으로 꼽힌다. 미래에셋대우는 공정거래위원회 일감 몰아주기 의혹 관련 조사 때문에 인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삼성증권은 배당금 지급 오류 사고, KB증권은 옛 현대증권 시절 불법 자전거래 적발로 단기금융업 인가 신청을 스스로 거둬들였다.
다행인 것은 최근 KB증권이 초대형 IB로 발돋움하는 절차에 다시 착수했다는 점이다. 18일 KB증권은 금융위원회에 단기금융업 인가를 재신청했다. 인가 신청을 자진 철회한 1월 이후 11개월여 만이다. KB증권이 인가를 받을 경우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토종 초대형 IB의 역량도 올라가는 선순환이 예상된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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