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대수입을 알 수 없는 미성년자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도시 일용노임이 아니라 ‘학력별 평균 소득’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계산해야 한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미성년자의 미래는 예측하기 어려우니 통계청에서 제시하는 고교·전문대·4년제 대학 졸업 비율에 학력별 통계소득을 가중평균해서 보자는 결정이다. 2심에서 판결이 확정돼 사건이 대법원까지 가지는 않게 됐지만 관련 소송과 보험업계 등에 영향이 클 수 있는 산정법인 만큼 추가 논의가 활발히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상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7부(김은성 부장판사)는 여성 대학생 한모(20)씨가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한씨에게 3,20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한씨는 지난 2010년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위반하고 돌진한 택시에 부딪혀 얼굴 등을 다쳤다. 1·2심은 모두 이 사고에 대한 택시운송조합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한씨의 미래 소득을 어떻게 계산해 배상액을 정할 지 여부를 두고 1·2심 판결이 갈렸다. 1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대로 한씨의 일실수입을 도시 일용노임인 10만6,846원으로 일률 계산했다. 이에 따라 한씨의 월 수입은 235만612원으로 인정돼 배상액은 2,900여 만원으로 결정됐다.
그러나 2심은 1심의 계산법이 장래의 기대 가능성을 모두 무시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진학률에 의해 가중평균한 학력별 전 경력 통계소득의 액수를 일실수입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구체적으로 현재 통계청이 제공하는 학력별 통계소득자료에 고교·전문대·4년제 대학 진학률 등을 반영하자고 제안했다. 또 동일노동 동일임금 대원칙에 비춰 남녀별 통계가 아닌 전근로자 통계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씨는 사고를 딛고 전문대에 진학했으므로 “사고가 아니었다면 최소한 이와 같거나 보다 더 나은 학력을 가졌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4년제 대학 편입률까지 감안, 310만1,083원을 월 수입으로 산정했다.
재판부는 “성년에 달한 뒤 장기간 무직자였던 사람은 앞으로도 그러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으므로 기본소득인 도시일용노임만을 적용해도 무방하지만 청소년인 피해자는 사고로 인해 다양한 직업 선택의 가능성을 상실하게 된다”며 “피해자에게 100% 확률의 예상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증명 기회를 봉쇄하는 부당한 처사”라고 설명했다.
기존 대법원 판례에는 원칙적으로 모든 피해자에게 도시 일용노임을 적용해 배상액을 계산했다. 어떤 학력·직업을 갖더라도 일용노임 이상의 수입을 얻을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1991년 대법원은 의대 본과 1학년생의 일실수입을 계산하면서도 “피해자가 의대를 무사히 졸업하고 의사 자격을 얻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힘들다“며 도시 일용노임을 적용하기도 했다. 이 판결은 원고와 피고 모두 상고하지 않아 지난해 말 확정됐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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