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축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수의사 4명 중 3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겪고 1명은 중증 우울증이 우려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에 대한 트라우마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같은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의 트라우마 예방과 치료를 위한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고 4일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 2017년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와 함께 공무원 및 공중방역 수의사 26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및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76%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들은 가축 학살을 한다는 죄책감을 느끼며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느끼며 매년 살처분 작업을 하는 데 무력감을 호소했다.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발생할 때마다 상당수의 가축이 살처분된다. 실제로 2010년에서 2011년 한창 구제역이 유행하던 시기에는 347만9,962마리, 2014~2015년에는 17만 1,128마리의 가축이 살처분됐다. 2010년 살처분 작업에 참여한 공무원 등이 자살 혹은 과로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의 신청을 받아 정신적, 심리적 치료비용을 지원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참여율은 저조한 상황이다. 농림부에 따르면 2014년 심리상담, 심리치료는 각각 1건에 그쳤다. 2017년 심리지원 강화 지시로 심리상담이 2,353건으로 뛰었지만 지난해 6월말까지 122건으로 다시 하락했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사건을 떠올리고 싶지 않은 회피 반응을 보여 적극적으로 치료에 나서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에 인권위는 농림축산식품부가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들에게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무적으로 안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심리적·신체적 증상 체크리스트 등을 통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 치료를 지원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특히 살처분 작업에 공무원, 공중방역 수의사 외에 일용직 노동자, 이주노동자도 참여하는 만큼 이들의 실태도 파악해야 한다.
인권위 측은 “보건복지부 산하 국가트라우마센터가 가축 살처분 작업 참여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연구를 실시해 트라우마 예방을 위한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번 제도개선 권고를 통해 살처분 작업 참여자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 파악과 보호 대책이 충분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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