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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라이프
[나윤석의 영화 속 그곳] 나무 터널처럼 뒤얽힌 '그녀'와 '그녀'의 사랑

⑪파주 벽초지 문화 수목원-'아가씨'

서울서 1시간, 1,400여종 식물로 빼곡

정문으로 들어서 왼쪽으로 20m 걸으면

하정우가 김태리 다그치던 '나무 터널'

성별·계급 초월한 사랑에 연민 느껴

‘벽초지 문화 수목원’을 찾은 연인이 영화 ‘아가씨’ 촬영지인 장수 주목 터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있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 컷.


영화감독 박찬욱의 관심사는 폭력에서 구원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스토커’ ‘아가씨’로 이어지는 최근의 행보는 이런 경향을 또렷이 입증한다. 박찬욱은 자기 영화만큼이나 말을 멋있게 하는 사람이다. 그가 지난 2016년 칸 영화제에서 작품 세계의 변화와 관련해 들려준 설명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하다. “프랑스 작가인 발자크의 한 소설에 나오는 구절처럼 모든 위대한 사람은 여성적인 섬세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아내와 같이 살고 딸을 키우면서 내 안의 여성적인 면모를 느끼게 됩니다. 남자가 나이 들어가는 것은 여성성을 발견하는 과정입니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주체적인 여성들의 사랑과 연대를 그린 ‘아가씨(2016년)’의 기억을 되새기고 싶다면 경기도 파주의 ‘벽초지 문화 수목원’으로 가면 된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닿는 이곳은 12만㎡ 부지에 약 1,400종의 식물을 보유한 수목원이다.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봄기운과 함께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는 나무들과 시원하게 트인 연못을 차례로 만난다.

‘벽초지 문화 수목원’ 한복판에 자리한 벽초지. 연못과 나무·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숙희(김태리)는 일본 귀족 아가씨인 히데코(김민희)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과 짜고 아가씨가 사는 저택에 하녀로 잠입한다. 그런데 어쩌나. 숙희는 일찍 부모를 잃고 집에 갇힌 채 매일같이 이모부(조진웅)로부터 학대를 당하는 아가씨에게 연민을 품는다. 이 연민은 사랑이 되고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비관하던 히데코도 어느새 총명하고 활기찬 숙희 덕분에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운다. 같은 성별과 차이 나는 계급은 두 여성의 자신만만한 사랑 앞에 한 줌 웃음거리일 뿐이다.

‘벽초지 문화 수목원’ 한복판에 자리한 벽초지. 연못과 나무·정자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아가씨’의 촬영지인 장수 주목 터널은 정문에 들어선 뒤 왼쪽으로 20m 정도만 걸으면 나온다. 양옆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손을 맞잡듯 가지를 뻗어 터널의 형상을 이룬 이곳에서 백작은 자신의 지시대로 움직이지 않는 숙희를 거칠게 몰아세운다. 물론 이 다그침은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한다. 이미 한패가 된 히데코와 숙희는 치밀한 모의로 백작과 이모부를 간단하게 제압하고 새로운 세계로 나갈 채비를 한다. 딴 세상에 온 듯 초현실적인 인상을 풍기는 나무 터널을 거닐다 보면 겨울 눈 녹듯 일상의 시름도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착각에 사로잡힌다.

‘벽초지 문화 수목원’ 한복판에 자리한 벽초지. 연못과 나무·정자가 어우러진 풍경 안에 하얀 두루미 한 마리가 보인다.


수목원에 자리한 모든 공간이 카메라 셔터 한 번 안 누르고 지나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최고의 경치를 선사하는 곳은 역시 ‘벽초지’다. 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듯 수양버들은 넓게 펼쳐진 호수 위로 가지를 드리우고 적당한 높이로 세워진 정자는 시 한 수가 절로 나올 만큼 호젓한 정취를 자아낸다. 수시로 날아드는 두루미의 우아한 자태는 풍경을 즐기는 나들이객의 흥을 한껏 돋운다. 수목원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9,000원이며 오전9시부터 일몰 때까지 운영한다. 단 동절기(11월24일~3월3일)에는 오후1시에 문을 열고 오후10시에 폐장한다. 영화에서 장수 주목 터널과 붙어 있는 공간으로 설정된 이모부의 저택은 일본 미에현에서 촬영됐다.

영화 ‘아가씨’의 스틸 컷.


박찬욱이 대표로 있는 제작사의 이름은 ‘모호필름’이다. 이 이름에 부합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듯 그의 영화는 언제나 다층적이고 모호한 결말로 관객에게 찝찝한 뒷맛을 남겼다. 개운하고 통쾌한 카타르시스는 박찬욱의 지향점과는 상극이었다. ‘올드보이’가 그랬고 ‘친절한 금자씨’도 마찬가지였으며 ‘스토커’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가씨’는 이 지점에서 전작들과 결별한다. 어슴푸레한 새벽 히데코와 숙희가 감옥 같던 집을 벗어나 초원을 내달릴 때, 먼 길을 떠나는 배 위에서 까르르 자지러지며 사랑을 나눌 때 관객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응원의 기립박수를 쳐주고 싶어진다. 여기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판단을 재고하는 회의(懷疑)도 끼어들 틈이 없다.

마지막 장면에서 휘영청 뜬 달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은 구름도, 불안하게 일렁이는 파도도 두 사람의 앞날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요컨대 ‘아가씨’는 박찬욱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 알 수 없는 미래를 걱정하는 대신 오감으로 생생히 느껴지는 현재를 만끽하는 영화다. ‘내일 따위, 될 대로 돼라’라는 담대하고 호방한 태도로. /글·사진(파주)=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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