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헌법재판소가 66년 만에 낙태죄에 대해 위헌 판단을 내림에 따라 그동안 여성들과 함께 ‘낙태죄’의 처벌을 받아왔던 의사들의 고통이 재조명되고 있다.
헌재가 낙태죄 위헌 결정을 내린 12일 온라인상에서는 BBC코리아가 지난 1월 ‘낙태 : 산부인과 의사들이 현장에서 바라본 낙태’라는 제목의 영상이 다시 화제를 모았다.
영상은 낙태에 대해 찬반 입장을 가진 두 의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16년 차 경력의 산부인과 전문의 원영석 씨는 “멀쩡한 아기를 죽이면서 의사를 한다? 저는 싫어요”라 말한 낙태 반대론자인 의사에게 “그러면 (낙태 수술) 안 하면 돼요. 안 하면 되는데 누군가는 도와줘야 해요”라고 답한다. 그는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를 ‘나쁜 의사’라 비난하며 의사에게만 책임을 돌린다”며 “우리 모두가 공범이다. 사회가 너무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또 “돈보다는 ‘생명’을 중시하기 때문에 낙태를 시술하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반대 입장에 “10대 소녀들, 경제적·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여성들이 아기를 나면 누가 키워 주느냐”고 반문했다. 과거 낙태죄는 임신중절을 시술한 의사와 받은 환자에게만 처벌이 가해졌다. 여기에 그는 “사고는 남자가 치고 왜 여자만 손해를 보는가”라고 물었다.
낙태 반대론자들 사이에서는 무려 4년 전 영상이 화제를 모았다. “4분 만에 낙태 합법 진영을 침묵시킨 의사”라는 제목의 영상은 2015년 8월 미국의 하원 법사위원회가 ‘가족계획실태: 낙태 시술 조사와 의학윤리(가제·‘Planned Parenthood Exposed’)’를 논의한 것을 배경으로 낙태 시술을 1,200회 집행한 의사의 발언을 담고 있다. 그는 대략 임신 14주부터 24주 사이인 임신 중기에 행해지는 중절 시술을 할 때 자궁 속에서 이뤄지는 일들과 태아에 가해지는 고통 등에 대해 상세하고 선명한 묘사를 이어갔다. 지나치게 자세한 설명을 듣던 여성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울먹거리는 모습이 영상에는 고스란히 담겼다.
사실상 ‘태아 살인’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영상에 대한 반박 논리도 나왔다. 영상 속에서 말하는 시술이자 현재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낙태 시술은 국제 의사협회에서조차 이제는 없어져야 할 구시대적인 시술법이 됐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낙태죄 폐지 운동을 펼치고 있는 레베카 곰퍼츠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는 “여성이 자기 자신을 위해 임신 중지를 결정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며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의 정의를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히 안녕한 상태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임신중지 약물의 유해성에 대한 가짜뉴스를 지적하며 “임신중지 약물이 위험하다고 말하는데 비아그라보다 안전하며 22주 전 임신중지는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낙태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는 수술 중 하나”로 “약을 요청한 한국 여성 1,328명 중 절반 가까이(49.5%)가 피임을 했지만 임신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어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고, 이것은 삶의 일부고 삶은 선택을 하는 것이며 그 선택은 때로 어렵지만 어려운 선택이 곧 부도덕한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말했다.
헌재가 낙태죄 처벌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국회에 시한을 정해 입법을 하도록 주문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는 낙태를 전면금지한 현재 형법 269조 1항은 위헌으로 임신 초기 낙태는 허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산부의 동의를 받아 낙태 수술한 의사를 처벌토록 한 형법 270조 1항 역시 위헌으로 판단했다. 이에 2017년 2월 낙태죄 처벌 조항에 대해 낸 헌법소원을 제기한 의사 A 씨는 과거 ‘헌법불합치’를 판결받은 사례들로 볼 때 무죄로 선고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최정윤 인턴기자 kitty419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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