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손과의 인연은 끊겼지만 창업자였던 박영춘 회장의 장녀가 새로 회사를 차려 사업 명맥을 이었다. 위즈크리에이티브 창업자 박소연 대표가 바로 그다. 그는 바른손에서 캐릭터개발팀장을 맡기도 했다. 박 대표는 “바른손은 미키마우스·스누피 같은 해외 캐릭터들을 문구류에 적용해 국내에 확산시켰는데, ‘더 이상 외국에 10%에 달하는 로열티를 주지 말고 국산 캐릭터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고 부부보이를 개발했다”고 전했다. 그는 “1980년대 중반까지 ‘캐릭터’라는 용어 자체가 국내에서는 생소했고 마스코트라는 용어가 쓰이던 시절이었다”고 회상한 뒤 “그런 상황에서 바른손은 다양한 해외 캐릭터 사업의 사례를 연구해 부부보이 캐릭터들을 다양한 상품군에 응용할 수 있도록 국내 최초로 캐릭터 스타일 가이드북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 가이드북을 바탕으로 부부보이와 후속 캐릭터들이 바른손뿐 아니라 식음료·생활용품 제조사 등 여러 분야 기업들에 라이선싱(수수료 등 일정한 대가를 받고 상표권과 같은 지식재산권 사용권리를 타인에게 부여하는 것)됐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상업용 캐릭터의 일생은 일반적으로 ‘캐릭터 개발→상품화→라이선싱’을 거친다. 이때 캐릭터 개발을 기업이 직접 스스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문 디자인 업체 등에 외주를 주기도 한다. 라이선싱 업무도 직접 캐릭터 저작권 보유 기업이 맡는 경우와 라이선싱 중개사업자에게 위탁하는 경우로 나뉜다. 따라서 캐릭터 산업의 생태계는 크게 ‘캐릭터 개발자→캐릭터 저작권자→라이선싱 중개사업자→캐릭터 사용자’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부수적으로 홍보·마케팅 대행사 등이 생태계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저작권 기업이 라이선싱 없이 자사 상품에만 고유 캐릭터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혹은 상품용이 아니라 자사 고유의 기업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물이나 공익 캠페인용 상징물로 캐릭터를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캐릭터 개발은 누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캐릭터의 원류에 따라 달라진다. 원류는 주로 만화·영화·게임과 같은 문화창작물이나 방탄소년단(BTS) 같은 문화·스포츠계 스타, 부부보이 같은 기업 자체 창작물로 분류된다. 이 중 문화콘텐츠가 주된 ‘원류’다. 세계 최초의 캐릭터 상품인 미키마우스도 월트디즈니사의 만화영화에서 탄생했다. 초창기만 해도 이 같은 문화창작물 기반 캐릭터의 개발자는 만화 원작자였다. 한국의 국민 캐릭터 ‘아기공룡 둘리’도 김수정 화백이 창조했다.
반면 만화·영화 산업이 고도화·거대화·분업화하면서 ‘창작물 원작자=캐릭터 개발자’라는 등식이 깨지는 일도 다반사다. 출판·영화·애니메이션 제작·기획사가 창작물의 기획 방향을 잡으면 그 콘셉트에 맞춰 외부 디자인 전문 사업자 혹은 독립 만화작가 등이 디자인 초안을 스케치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초안을 받은 기획사가 다시 자체적으로 다듬어 완성도를 높인다. 캐릭터가 적용될 창작물의 성격과 적용 매체종류, 상품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에 맞도록 캐릭터의 형태와 배경 스토리 등을 조율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도화된 캐릭터 개발의 생태계마저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여파로 또다시 변모할지 모른다. 사람이 아닌 인공지능(AI)이 캐릭터를 창작하는 시대가 현실화했기 때문이다. 이미 AI는 빈센트 반 고흐 등 유명 화가들의 화풍을 학습하고 이를 응용해 신작을 직접 그리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AI가 창작한 캐릭터의 저작권은 인정될까. 현재로서는 법적 근거가 없다. 현행 저작권법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만을 저작권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인간이 아닌 AI의 창작물에 적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당 딜레마는 국제적으로도 저작권제도의 큰 화두다. 한국의 캐릭터 산업이 4차 산업에 맞게 진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선제적으로 저작권법 제도 등을 정비해 새 조류의 물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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