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는 오전10시부터 11시37분까지 97분 동안 어느 때보다 치열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문 대통령은 국무회의 석상에서 각 부처 장관들에게 각종 ‘깨알 지시’를 내렸다. ‘적극적 행정을 하라’ ‘후속조치를 내놓아라’ ‘대책을 발전시켜라’ 등 국정운영에 대한 답답함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을 하시니 장관들도 화답을 하면서 열띤 회의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오는 10일 취임 2주년을 맞는 가운데 집권 3년차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절실함이 드러나는 행보들이 두드러진다. 대통령 주재 수석보좌관회의·국무회의 등에서 성과를 독촉하는 지시가 늘었고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는 눈에 띄게 친기업 행보를 보이며 활력을 되살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분기 성장률, 수출 감소 등 악화된 각종 경제지표가 문재인 정부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당초 계획을 대폭 앞당겨 올해 중 불법폐기물을 전량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전국에 적체돼 있는 약 120만톤의 불법폐기물을 2022년까지 정부가 처리하기로 했으나 이를 3년이나 앞당기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러면서 제도 개선에 있어 강력한 조치 등 ‘행정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30일 국무회의에서도 문 대통령의 깨알 지시가 이어졌다. 유류세 인하 연장과 관련해서는 ‘한시적인 조치’에 불과하다면서 서민·자영업자를 위한 후속대책을 주문했다. 국군포로의 예우 기준, 방법 등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시행령에 규정하는 것을 놓고는 “문제 제기가 됐을 때 타당성이 있으면 선제적으로 조치하라”며 “헌재에 가기 전이라도 스스로 개정하는 적극적인 행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강원도 산불 대응에 대한 소방청의 대응을 치하하면서도 “화재가 났을 경우 여러 건축물의 설계도면이 소방관에게 공유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됐으면 한다”며 상세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이처럼 청와대와 내각을 채찍질하는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친기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고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찾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문 대통령은 삼성을 찾아 시스템반도체 전략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의) 원대한 목표 설정에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행사 말미에는 이 부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수석보좌관회의에서는 “SK하이닉스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120조원, 삼성이 시스템반도체에 133조원의 투자계획을 발표한 것은 국가경제를 위해 매우 반가운 소식”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수보회의에서 구체적인 대기업 이름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행보는 집권 3년차의 국정 성과가 문재인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절박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집권 초부터 이어진 최저임금 인상 논란으로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평가가 야박한 가운데 취임 2주년을 앞두고 대외 경제여건까지 악화하고 있는 것도 문 대통령이 내각을 담금질하는 배경으로 해석된다. 청와대 대변인실 역시 최근 들어 대통령의 메시지를 더 적극적으로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현안 해결에 머무르지 말고 근본적 대책과 성과를 주문하는 것은 대통령께서 꾸준히 강조하던 메시지”라고 밝혔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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