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이 매년 등락 없이 안정적이고 현금성 자산도 상당하다.”
완전자본잠식에 채권단 관리까지 들어간 한진중공업(097230) 통상임금 소송에서 대법원의 근거는 매출 안정성과 현금성 자산 액수였다.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이 일어나고 있는 만큼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앞서 열린 2심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다. 원심은 “장기적인 경영난 상태에 있는 한진중공업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지출을 하게 돼 경영상의 어려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며 사측의 신의칙 위반 논리를 받아들였다. 2심 재판부는 한진중공업의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할 경우 통상임금이 약정 때보다 60% 이상 증가한다고 봤다. 한진중공업 조선사업 부문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매년 영업적자를 기록한 점을 들며 “적자 규모가 점점 늘고 있어 단기간에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판단했다.
한진중공업은 계속된 경영 악화로 지난 2016년 1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맺고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지난 1월 최대 자회사 수빅조선소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필리핀 현지 법원에 신청했다. 올 3월에는 채권단이 6,874억원 규모의 채무를 출자전환하기로 결정하면서 총수였던 조남호 회장이 경영권을 박탈당했다. 한진중공업 측은 이 같은 대법원 결정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진중공업이 어렵지 않으면 어느 회사가 어려운 회사냐’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필리핀 현지에 세운 자회사 수빅조선소에서 내는 적자가 누적된 탓이다. 한진중공업의 지난해 1조2,83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16년과 2017년에도 각각 3,134억원, 2,780억원의 손실을 봤다.조선업계 관계자는 “한진중공업이 산은 대주주 체제로 변경되긴 했지만 근본적 체질이 좋아진 게 아니라 산소호흡기만 달아놓은 것”이라며 “이런 회사를 두고 회사 사정이 괜찮다며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게 의아하다”
법조계와 재계는 현재 대법원에 유사 사건이 계류 중인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 금호타이어 등도 한진중공업 판결의 영향을 받아 사측이 패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측의 신의칙 주장이 받아들여지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통상임금 소송에서 법원의 재량이 너무 크다는 점 때문이다. 한진중공업 소송에서도 법원은 매출은 소 제기시점으로 잡았지만 현금성 자산이나 현금흐름은 2015년말을 기준으로 봤다. 여기다 판결의 기준이 이익이 아닌 매출이라는 점도 문제다. 조선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조선업은 매출에 비해 이익이 적게 남는 산업”이라며 “돈줄이 말라서 채권단 지원으로 연명하는 기업을 매출이 크다는 이유로 상황이 어렵지 않다고 본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조선업은 현재 세계 경제 침체에 따른 선박 발주량 급감과 선가 하락으로 ‘남는 것’이 없는 저가수주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는 통상임금 소송이 쟁점을 빗나가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신의칙 판단의 기준은 노사합의”라며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450명이상 기업 중 통상임금 소송중 인 35개 기업이 모두 패소하면 8조3,673억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윤경환·박한신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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