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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구찬 선임기자의 관점] '관람료 폐지' 文공약, 조계종 결단·합당한 보상 없인 공염불

■문화재 관람료 갈등 현장을 가다

국립공원 면적 7.2% 사찰 재산

文 약속했지만 규제하긴 어려워

'공원 입구부터 징수' 15곳 육박

관람료 연간 400억 안팎 추정

요금 폐지땐 정부·지자체 지원

천은사·범어사 '윈윈' 접점 찾아

매표소 이동-보전 제도 마련 등

양측의 대승적 판단 필요한 때







등산깨나 다닌 사람들은 속리산을 법주사 코스로 올라가지 않는다. 경북 상주시 화북 탐방센터에서 출발해 속리산 아홉 봉우리 가운데 풍광이 으뜸인 문장대를 거쳐 법주사로 내려온다. 대략 6시간이 걸리는 산행 코스다. 산꾼들이 법주사에서 출발하지 않는 것은 이유가 있다. 문화재 관람료 내기가 꺼려지기 때문이다. 관람료 4,000원이 딱히 부담스러워서만도 아니다. 등산하러 왔지 문화재를 보러 온 것도 아닌데 이유를 불문하고 관람료를 내야 하는 게 납득이 가지 않아서다.

어린이날 연휴 첫날인 4일 속리산 법주사 매표소.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내걸린 형형색색의 연등이 반갑지만 도로를 가로막은 검표소 철문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부가 지난 2007년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한 후 13년째 이어져온 등산객과 사찰의 갈등 현장이다. 여기에는 국민 전체의 공익과 사찰의 사유재산권이 충돌하고 문화재의 관리비용 분담 문제와 정부기관의 칸막이 행정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지리산 천은사의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 폐지로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폐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지난 4일 속리산국립공원 입구의 법주사 매표소에서 탐방객들이 표를 구입하고 있다. 이곳을 통과하려면 4,000원을 내야 한다. /속리산=권구찬기자


가족 단위의 탐방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관람료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풍경은 없었다. 하지만 기자가 물어보면 떨떠름한 표정부터 짓는다. 대전에서 온 등산객 김모씨는 “법주사를 가지 않을 등산객에게도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목청을 높였다. 매표소에서 법주사와 등산 코스의 갈림길까지는 10여분을 더 올라가야 한다. 그는 “갈림길에 매표소를 두면 싸울 일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속리산 국립공원 탐방지원센터의 한 직원은 “매표소에서 항의하다 성이 안 차면 탐방센터에서도 따진다”며 “이 일대가 사찰 소유의 땅이어서 방문객의 화를 최대한 풀어드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국립공원 내 사찰의 문화재 관람료 징수는 해묵은 논쟁거리다. 논란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국립공원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며 공원 입장료를 폐지하면서 시작했다. 입장료가 폐지된 마당에 등산만 하려는 데도 공원 입구에서 무조건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니 국민의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관람료를 받는 국립공원 내 사찰은 24곳. 이 중 9곳은 사찰 입구에서 요금을 받아 큰 문제가 없지만 나머지 15곳은 공원 입구에서 징수해 민원이 집중된다. 도립·군립공원 내 사찰까지 합치면 62곳에 이른다. 신용카드 결제가 되지 않은 국립공원 내 사찰도 8곳이나 된다. 국립공원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취지가 무색할 수밖에 없다.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할 때 관람료 문제까지 함께 풀어야 했는데도 방치하다 이 지경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법주사 문화재 관람료 영수증




오랜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계기는 일단 마련됐다. 지리산 천은사는 지난달 28일부터 노고단 지방도로에서 받던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폐지했다. 대신 정부와 구례군이 사찰 수익기반 제공과 탐방로 재정비, 사찰 소유의 도로부지 매입 등을 약속했다.

그렇다면 천은사의 사례가 관람료 폐지의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관람료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불교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요 사찰들이 사찰 입장료를 받으면서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고 그 때문에 불교가 원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제는 그런 입장료를 폐지하는 대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찰에 전통문화 보전을 위해 보다 많은 지원을 해주겠다.”

하지만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우선 사찰 측은 요지부동이다. 불교계는 “시민단체 등이 요구하는 매표소 위치변경은 관람료를 폐지하라는 말과 다름없다”는 입장이다. 채수희 문화재청 정책총괄과장은 “국립공원 내 사찰 가운데 천은사 같은 사례가 진행되는 곳은 없다”고 설명했다. 문화재 관람료 징수액은 연간 4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관람료를 받는 사찰 측의 논리가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흔히들 국립공원이 국가 소유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국립공원 전체 면적의 7.2%는 사찰 소유입니다. 정부가 사찰부지를 국립공원으로 일방적으로 지정하고 문화재관리법 등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입니다. 문화재를 천 년 넘도록 관리·보전한 공적 기능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조계종의 문화재 관람료 정책개선 소위원장인 덕문 스님의 말이다.

접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덕문 스님은 “정부는 오랫동안 뒷짐을 진 채 관람료 문제를 사찰과 시민의 갈등으로 몰고 갔다”면서도 “이제는 정책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공을 넘겼다. 그는 몇몇 사찰은 보상을 전제로 관람료를 폐지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조계종도 합당한 보상을 전제로 폐지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례는 이미 있다. 범어사는 2008년 부산시로부터 연간 3억원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관람료를 없앴다. 법주사도 무산되기는 했지만 3년 전 범어사와 같은 방식의 해법을 모색한 적이 있다. 법주사 상가지구에서 20여년간 장사를 해온 산채식당 주인은 나름의 절충점을 제시했다. 관람료를 절반으로 낮추되 사찰 입구에 매표소를 추가로 만들어 관람객만 나머지 절반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찰 땅을 국가가 매입하거나 문화재 관리주체를 소유자인 사찰에서 국가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현실적이고 사회적 갈등을 더 부추길 소지가 다분하다. 현재로서는 대선 공약대로 ‘폐지와 보상’의 빅딜 외에 해법이 딱히 보이지 않는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정인철 사무국장은 “매표소 위치를 이동해 국민 선택권을 보장하고 그로 인한 사찰 수입 감소분을 제도적 틀 내에서 투명하게 지원하는 방식이 그나마 최선”이라며 “다만 사찰마다 상황이 달라 천은사 모델을 일괄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찰은 국민 선택권을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수백억원의 수입 때문에 불교계가 욕을 먹을 일도 아니다. 반대로 정부로서는 사찰 측의 일방적 ‘보시’만을 기대해서는 곤란하다. 오는 12일이 부처님오신날이다. 해묵은 갈등을 관불(灌佛·어린 부처의 목욕 의식)로 속세의 번뇌에서 벗어나듯 씻어낼 수 있을 까. 속리산=권구찬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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