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현대적인 ‘성 정체성 개념’이 인간의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교육 지침을 발표해 성소수자 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교황청 가톨릭교육성은 10일(현지시간) 공개한 ‘남성과 여성, 하느님이 그들을 창조했다’라는 제목의 31쪽짜리 문서를 통해 성을 후천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현대의 ‘성 정체성’(gender identity) 개념이 남성과 여성 사이의 태생적인 차이를 부정하고, 가족의 가치를 불안정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했다.
가톨릭교육성은 “우리가 특히 정서와 성적 취향 부문에 있어 교육적인 위기로 불릴 만한 현상에 직면해 있음이 갈수록 명백해지고 있다”며, 이 문서가 가톨릭 교사들이 남성과 여성의 자연적인 차이를 부정하는 생각에 맞서는 것을 돕기 위해 발표됐다고 설명했다.
가톨릭교육성을 이끄는 주세페 베르살디 추기경은 “젠더 이론은 아동들의 교육에 있어 단선적인 생각만을 강요하려 한다”며 “이 이론은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와는 동떨어진 개인적인 정체성과 정서적인 친밀성만을 강조하는 교육 프로그램, 법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가톨릭교육성은 이 문서에서 또한 “가변적인 성적 정체성은 자유라는 혼란스러운 개념에만 근거하고 있다”며 “성(性)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게 부여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적 차이를 넘어서는 시도들, 가령 ‘중성’ 또는 ‘트렌스젠더’ 등은 애매모호한 남성성, 여성성으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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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예고 없이 발표된 이번 문서에는 성 정체성을 둘러싼 문제에 대한 대화를 촉구하고, 누구도 놀림이나 차별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사람을 존중하도록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성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확고한 이분법으로 규정하며 어떤 일탈도 부정한 데다 공교롭게도 성소수자(LGBT) 공동체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달이자,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기념비적인 사건인 뉴욕 ‘스톤월 인’ 급습 50주년에 맞춰 나와 논란을 예고했다.
당장 미국의 성소수자 가톨릭 신자들의 권익을 옹호하는 단체인 ‘뉴 웨이즈 미니스트리’(New Ways Ministry)는 이 문서가 성전환자뿐 아니라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 모두를 억압하는 데 사용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 단체는 “문서가 강조한 개념은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정보에 근거했을 뿐 아니라, 성의 결정에는 생식기뿐 아니라 출생 시에는 드러나지 않는 유전, 호르몬, 두뇌의 화학적 성질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현대 과학을 무시하고 있다”며 “이 문서가 성소수자들을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재유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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