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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간절함은 여행자의 도덕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여행자의 우선순위는 세상의 가치들과 역행해도 좋다. 세상은 지금 물질로 뭉쳐진 것에 가치를 두고, 여행자는 예나 지금이나 마음을 찾는 데 가치를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역행에는 간절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간절함은 여행자의 도덕, 간절하지 않으면서 탐하는 것은 사치이자 비도덕이다. ‘마음 여행’은 끝나버리고 ‘돈 구경’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아무리 가난한 여행자라도, 스스로 엄정하지 않으면 돈 구경만 하고 돌아오는 수가 있다. 아마 우리의 삶도 비슷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삶의 여행자들이니까. (오소희,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2013년 북하우스 펴냄)

“여름휴가 계획은 세우셨나요?” 이맘때 주고받는 인사말이다. 당신은 올여름 어디로 떠날 작정인가? 여행작가 오소희는 어느 날 어린 아들과 함께 훌쩍 남미로 떠난다. 2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페루에서, 숙소 주인이 당연하다는 듯 묻는다. “나스카에 갈 건가요?” 페루 관광객들은 대개 나스카 지상화를 보러 간다. 인당 10만 원짜리 경비행기를 타고 사막 위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을 감상하는 특별한 투어다. 문제는 이 경비행기가 저공비행을 하기 때문에,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도 전에 지독한 멀미로 인해 자기가 게워낸 토사물 봉투에 코 박는 사람들이 꽤 많다는 점이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세계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유적지 코앞까지 온 그녀는 고민한다. 과연 내 아이와 나에게도 이것이 특별한가? 결국 그녀는 나스카에 가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 인류 전체의 불가사의를 목격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나와 내 아이의 간절함과 미소라 믿으면서.

생활인의 도덕이 세상의 모든 말과 조건들 속에서 끝끝내 살아내는 것이라면, 여행자의 도덕은 오직 내 안의 ‘간절함’이다. 그러므로 올여름 여행지에서는 내가 쇼핑하듯 소비하고, 자랑하기 위해 셔터를 눌러대지 않기를. 오직 ‘간절함’만이 나의 이정표가 되어주기를.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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