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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디지털시대에 진료내역 종이·CD로만…'맞춤형 예방의료' 가로막아

<의료소비자 진료데이터 접근권>

희귀질환자는 출력물만 수백쪽

다른 의료기관서 활용 어렵고

의료정보 통합검색도 불가능

수요자 중심 의료 발전 걸림돌

美 '블루버튼 이니셔티브' 처럼

자유롭게 내려받는 접근권 절실

낡은 의료법 개정 등 서둘러야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소비자 중심의 참여형 건강관리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송승재(오른쪽) 한국디지털헬스산업협회 회장이 지난달 22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과 공동으로 주최한 ‘디지털 헬스케어 기반 수요자 중심의 건강관리체계 구축방안’ 정책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임웅재기자




병원을 찾는 환자들의 최대 불만 중 하나는 자신의 치료결과에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의사들의 짤막한 설명을 알아듣기도, 진료 내용을 확인하기도 어렵다. 행여 병원이라도 옮길라치면 똑같은 검사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종이로 출력된 진료기록 사본을 발급받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의료시장이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공급자 위주로 움직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의료정보(데이터)의 기본적 소유 주체는 의료 소비자인 환자 등 개인이다. 병·의원은 의료정보를 생산하고 관리할 뿐이다. 하지만 의료 소비자들이 자신의 의료정보에 대한 주권을 매우 제한적으로만 행사할 수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의료법 제21조는 환자나 가족·대리인 등이 진료기록부·간호기록부나 전자의무기록에 대한 열람 또는 사본 발급만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의료기관은 대부분의 진료 정보를 전자의무기록 등 디지털 형태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연말정산 등 세금 관련 업무, 신용카드 결제내역 조회 등을 온라인으로 해결하는 시대에 환자는 자신의 전자의무기록 등을 열람하거나 사본을 발급받으려고 의료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그나마 종이·CD로 받을 수 있을 뿐이다. 희귀질환자 등의 경우 출력물이 200~300쪽에 달해 다른 의료기관 의사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간에는 환자나 보호자의 진료정보교류(개인정보 이용) 동의를 받아 진료기록 사본, 진료경과에 대한 소견 등을 전송한다. 반면 진료비를 낸 환자는 정보통신기술(ICT)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신의 의료정보를 통합적으로 검색할 수 있는 웹사이트도 없다. 금융정보의 경우 정부가 ‘마이 데이터’ 사업을 통해 휴면계좌까지 찾아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과 협력 병·의원 간에 진료기록 사본, 진료경과에 대한 소견 등을 전자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진료정보교류사업을 벌이고 있다.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자기공명영상(MRI) 같은 영상정보, 진단·투약 등 진료기록이 오가면서 중복촬영·검사 등을 줄이고 과거 진료기록을 진료에 활용해 진료의 연속성 제고, 약물사고 예방, 응급상황 대처 등에 도움이 된다. 복지부는 참여 의료기관을 이르면 올해 말까지 32개 거점의료기관(27개 상급종합병원, 5개 종합병원)과 3,800여 병·의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하지만 환자는 옮겨갈 병원에 진료정보를 직접 전달하는 불편을 덜 수 있을 뿐 전자적으로 직접 받아보지는 못한다.

반면 미국은 지난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병원에 있는 의료정보를 자신이 내려받을 수 있도록 한 ‘블루버튼 이니셔티브’를 시작했다. 애플은 지난해 의사가 처방한 약품이나 검사결과 등 개인의 건강기록을 의료기관으로부터 직접 전송받아 아이폰에 저장할 수 있는 건강관리 앱을 개발했다.

김영 사이넥스 대표는 “이미 미국에서는 의료비 낭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환자의 자기 건강데이터 접근권을 부여했고 이에 따른 의료진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우리도 의료 효율성과 환자안전, 건강관리 질 향상 등을 위한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이 자신의 의료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앱을 제공하고 있지만 환자가 내려받을 수 있는 기능은 역시 없다. 초음파나 병리과 등의 중요 내용은 아예 열람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신을 중심으로 모아서 관리하고 유전체 정보와 연계해 분석하는 게 불가능하다.



강건욱 서울대병원 핵의학과 교수(서울대 정보화본부 연건센터 소장)는 개인 의료 데이터 활용이 자유로운 미국의 한 유전체 분석 기업을 통해 자신이 항응고제를 복용할 필요가 없다는 정보를 얻었다. 간 효소가 이 약물을 빠르게 분해해 복용해도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몸에 어떤 영양소가 부족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약물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됐음에도 국내에서는 이를 이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주도하는 보건의료 빅데이터 구축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연구자 및 산업계와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시민단체 간 줄다리기로 한 발짝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서 의료소비자는 소외돼 있고 빅데이터를 구축하더라도 익명화를 해 자신의 데이터 관리 및 맞춤 서비스를 받는 혜택은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환자가 본인 기록을 열람하거나 사본 발급을 요청하는 경우 각 의료기관에서 환자에게 자료를 전송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환자 자기 진료기록 열람과 활용을 쉽게 하는 전자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진료기록 사본과 진료경과에 대한 소견 등을 전송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강 교수는 “종이로 프린트한 환자 건강정보는 타 의료기관에서 받은 건강검진 정보를 활용하기 어렵고 환자에게 번거로움을 초래해 비효율적”이라면서 “디지털 데이터로 건강정보를 내려받아 원하는 의료기관에 등록하고 건강검진을 받는 인프라를 구축해 소비자에게 유전자·암 등 중요한 의료 정보를 전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ICT, 생명공학기술(BT)의 발전으로 보건의료의 패러다임은 예측·예방의학으로서의 의료, 개인화된 맞춤형 의료로 진화하고 있다. 또 클라우드 기술,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디지털 헬스케어의 발달로 의료기관의 정보가 개인에게 쉽게 전달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래 의료는 예측(Prediction), 예방(Prevention), 개인맞춤(Personalized), 참여(Participatory) 4P로 요약된다. 개인 유전체 정보와 사물인터넷(IoT) 장비에서 생성되는 건강정보, 병·의원 진료정보 데이터를 인공지능(AI)이 분석해 개인맞춤 예방을 개개인이 실천하는 의료다. 유전체 검사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개인유전체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됐다. 스마트폰 기능발달과 웨어러블 장비들이 잇달아 선보이면서 운동량·심박동수 등 다양한 건강 데이터 수집도 가능해졌다.

국내 의료계가 환자 중심 예방의료·정밀의료 시대에 뒤지지 않고 ICT 산업과 함께 성장하려면 개인정보 보호와 진료정보 활용을 균형 있게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정일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스마트 헬스케어는 혁신기술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마트한 질병치료 및 건강관리를 목적으로 하는데 해당 기술과 데이터 차원의 이중규제를 받고 데이터 보호 수준도 높다”며 “반면 데이터 활용 측면은 법적으로 상당히 미비한 만큼 개인정보 보호와 활용 간의 균형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단기적 해법으로 “의료법 제21조의2(진료기록의 송부 등)를 고쳐 복지부가 의료기관 간 진료정보 교류를 위해 구축·운영하는 진료기록전송지원시스템의 목적에 ‘환자의 자기 진료기록 열람·활용’을 추가하고 진료정보교류표준 고시 제8조 제2항(교류시스템이 갖춰야 할 기능)에 ‘환자 본인 및 대리인에 의한 교류문서 내려받기’를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는 보건의료 정보를 소비자 개인이 검색하고 내려받을 수 있는 ‘소비자 중심 건강정보서비스 플랫폼’ 구축도 제안했다.

박현애 대한의료정보학회 차기 회장(서울대 간호대 교수)은 “뛰어난 인프라를 가진 국내 병원이 의료정보를 양껏 활용한다면 차별화된 맞춤형 진료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이는 결국 환자의 건강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최근 주최한 정책토론회에서 “의료정보화 체계 구축으로 보건소 및 병원의 전자의무기록과 건강검진센터의 검진정보, 건강보험공단 및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디지털 형태로 구축된 개인의 보건의료 정보가 연계되면 의료소비자가 스스로 참여하는 맞춤 예방이 가능하다”며 “이제는 개인의료정보 활용에 대한 문제, 그리고 분산된 의료정보에 대한 표준화 방안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통해 수요자 중심의 건강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개인이 본인 정보를 직접 내려받거나 동의하에 제3자에 제공해 다양한 분야의 데이터 활용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마이 데이터 사업을 추진 중이다. 보건복지부도 이 사업을 통해 대학병원의 의료 데이터를 환자 개인이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임웅재 선임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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