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홍콩과 맞닿은 광둥성 선전을 홍콩을 능가하는 글로벌비즈니스 중심으로 육성하기로 했다.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및 민주화 요구 시위가 지속되고 있는 홍콩에 대한 압력을 높이는 한편 본토의 ‘대타’를 키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19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따르면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국무원은 전날 선전을 ‘중국 특색사회주의선행(先行)시범구’로 건설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중국이 만든 관련 시범구 제도의 첫 사례다. 가이드라인은 선전을 오는 2035년까지 종합적인 경쟁력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도시로 만들며 이번 세기 중엽까지 경쟁력과 혁신·영향력 면에서 글로벌 ‘벤치마크’가 되게 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각종 법령을 국제 기준에 맞춰 정비하고 외국인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 더 우호적인 정책을 시행하기로 했다. 홍콩·마카오 금융시장과의 연계도 촉진하고 선전에서 일하는 두 도시 주민에게 ‘선전 시민’ 대우를 하기로 했다.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도 가속화하고 직업훈련을 포함한 교육 시스템과 의료 시스템도 서둘러 개선할 계획이다.
기존에 상하이 등 12개 도시에 지정된 ‘자유무역시험구’와 다른 것은 경제뿐 아니라 사회 분야로도 개혁과 개방을 확대한다는 점이다. 인민일보는 “중국 특색사회주의선행시범구‘는 법치와 문명·민생 등에서도 시범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시범구 지정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홍콩을 소외시키고 선전을 대표적 금융·산업 중심지로 키우려는 계획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선전은 지난 1980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로 지정된 후 고속성장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2조4,222억위안(약 3,432억달러)을 기록하며 홍콩을 추월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해 이번 조치로 선전이 홍콩을 뛰어넘는 경제 중심지로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톈페이룽 베이항대학 교수는 홍콩이 국제 금융허브로 남을 것이라면서도 “홍콩은 대만구 전략의 주 역할을 맡기에는 부적절하다. 홈 경기장은 본토 도시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중국 정부는 2월 홍콩·마카오·선전·광저우를 4개 기둥으로 삼고 광둥성의 다른 도시까지 포함해 총 11개 도시를 통합경제권으로 묶는 ’웨강아오대만구(大灣區·Great Bay Area)’의 청사진을 공개했다. 이번 조치는 웨강아오대만구의 핵심도시로 중국 정부가 선전을 선택한 것으로 해석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날 “홍콩의 민주화시위 격화로 중국 정부가 대만구 계획에서 홍콩의 지위를 격하할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에 이번 가이드라인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송환법 반대시위가 11주째 지속되면서 홍콩과 중국 간 갈등은 경제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홍콩 온라인에서는 친중 기업들의 제품을 사지 말자는 ‘바이바이데이 홍콩(Bye Buy Day HK)’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다. 캠페인을 주도하는 단체는 일본 식당체인 요시노야, 미국 맥도날드, 중국 레스토랑 체인 카페드코랄, 쇼핑사이트 Z스토어 등 친중 성향의 기업 명단을 올리며 이들에 대한 불매운동을 독려하고 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마스크와 레이저포인트 등 홍콩 시위 참가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물품의 홍콩 지역 판매를 중단했다고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가 보도했다. 또 중국 네티즌들은 ‘지유홍콩 티셔츠’ 등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물품의 생산자들도 찾아내 공격하고 있다.
홍콩 시위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장정 정신을 강조하며 단결을 촉구했다. 이날 인민일보는 시 주석이 중국 관영 매체들이 대거 참여하는 ‘기자가 다시 걷는 장정의 길’ 기획 취재와 관련해 중요 지시를 통해 대장정의 길을 제대로 걸을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1930년대 중국 홍군이 1만5,000㎞에 달하는 고난의 행군을 치러낸 후 공산당이 정권을 잡아 중국을 이끌 수 있게 됐듯이 현재 홍콩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 또한 단결로 이겨내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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