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화하는 가운데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사실상 계엄령 선포와 마찬가지인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 발동을 시사해 홍콩 사회가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람 행정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폭력과 혼란을 멈출 수 있는 법적 수단을 제공하는 홍콩의 모든 법규를 검토할 책임이 있다”고 밝히며 긴급법 시행 가능성을 시사했다. 긴급법은 비상상황이 발생하거나 공중안전이 위협받을 때 행정장관이 홍콩 의회인 입법회의 승인 없이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한 법규다. 긴급법이 적용되면 행정장관은 체포, 구금, 추방, 압수수색, 교통·운수 통제, 재산 몰수, 검열, 출판·통신 금지 등에서 무소불위라고 할 정도의 ‘비상대권’이 부여된다. 사실상 계엄령에 가까운 조치로 홍콩 역사에서 긴급법이 적용된 것은 지난 1967년 7월 반영(反英)폭동 때 단 한번뿐이다.
홍콩 명보는 이러한 구상이 중국 정부로부터 나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명보에 따르면 이달 초 홍콩과 마주한 광둥성 선전에서 열린 한 좌담회에서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판공실의 장샤오밍 주임은 “홍콩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며 홍콩 행정장관에게 계엄령 발동 권한을 부여한 ‘공안조례’를 거론했다. 이에 대해 한 친중파 핵심 소식통은 “선전 좌담회 후 홍콩 정부 내에서 분명히 긴급법 적용을 논의했다”며 “다만 너무 일찍 긴급법을 꺼내 들 경우 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등 여러 의견이 있어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또 이 소식통은 “정부는 오는 10월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때 국제사회의 시선이 홍콩에 쏠리는 것을 우려해 이전에 시위를 진압하기를 원한다”며 “8월31일 시위의 추이를 보고 긴급법 적용 여부를 다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환법 반대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31일 오후3시부터 도심인 채터가든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날은 2014년 8월31일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이기도 하다.
홍콩 경찰에 따르면 12주 동안 진행된 홍콩의 송환법 반대시위로 현재까지 체포된 사람은 모두 883명으로 늘어났으며 이 가운데 136명은 기소된 상태다.
한편 람 장관의 긴급법 검토 시사에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제임스 토 민주당 의원은 “긴급법 적용은 홍콩에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며 “이는 기본적인 자유를 침해하고, 평화적 집회의 권리를 완전히 박탈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 내부와 법조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SCMP는 행정장관 자문기구인 행정회의에서 친중파 레지나 이프 의원 등 2명이 긴급법 발동에 반대했다고 전했다. /박민주기자 parkm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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