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이 파기환송심 첫 재판을 받았다.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의 쟁점은 예상대로 이미 대법원 판결로 확정된 유무죄 판단이 아닌 이 부회장의 사회적 역할을 고려한 양형 판단에 집중됐다.
이 부회장은 25일 오전10시10분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 심리로 치러진 자신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9시30분께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해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법정에 나온 것은 지난해 2월5일 항소심 선고 이후 627일 만이다.
이날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첫 재판은 예상대로 재판관이 재량으로 형을 깎아주는 ‘작량감경’에 쟁점이 집중됐다. 이 부회장 측은 재판 초기부터 “대법원 유무죄 판단은 다투지 않고 주로 양형 심리에 대해 변론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측이 유무죄 다툼을 미루고 양형 판단 ‘올인’ 전략에 나선 것은 지난 8월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유라씨에게 제공한 말 세 마리(34억원)와 영재센터에 지원한 후원금(16억원)까지 모두 삼성의 뇌물로 인정하면서 뇌물 총액이 86억원으로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더 이상의 추가 반박 증거를 찾아내지 못하는 이상 전원합의체의 유무죄 판단을 뒤집을 길은 없다. 이 부회장의 뇌물액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액으로 그대로 연결되는데 이 액수가 50억원을 넘으면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받아야 한다.
이 부회장 입장에서는 이제 재판장이 경제와 기업경영 위기 등 다른 사정을 참작해 형을 깎아주는 방법을 노리는 수밖에 없다. 형법상 유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형기의 절반을 깎도록 하며 집행유예의 대상이 되는 형량은 3년 이하의 징역이다. 이 부회장은 이론상 법정형 하한 근처인 징역 5~6년의 절반, 즉 징역 2년6개월~3년까지 감형을 받아야 집행유예 선고를 끌어낼 수 있다.
이 부회장 측은 “국정농단 사건은 삼성뿐 아니라 여러 기업이 얽혔다”며 이달 17일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확정받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기록을 보여달라고 특검 측에 요청했다. 신 부회장과 이 부회장 간 양형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사건 핵심은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과 부정한 청탁의 뇌물”이라며 “이 부회장을 위해 어떻게 승계작업이 무리하게 진행됐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 기록을 증거자료로 내겠다”고 맞섰다.
양측 의견을 들은 정 부장판사도 법리적 쟁점보다는 이 부회장의 사회적 역할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정 부장판사는 이 부회장에게 “어떤 결과에도 책임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임해주기를 바란다”며 “재판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 해야 할 일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며 “재벌 총수는 이스라엘 등을 참고해 재벌체제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주문을 덧붙였다.
재판 말미에는 불현듯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까지 거론했다.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고,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 부회장의 선언은 무엇인가”라고 물은 뒤 재판을 마무리했다.
재판부는 오는 11월22일 유무죄 판단을 위한 재판과 12월6일 양형 판단을 위한 재판을 각각 연 뒤 심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최종 선고는 이르면 연내 치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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