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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택의 세상보기] 통계는 사수하는 게 아니다

정석인하학원 이사장

경제통계는 객관적 검진표인데

'장밋빛 숫자'는 상실감만 부르고

'체리피킹'으로 신뢰까지 떨어져





19세기 영국 총리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세상에는 세 가지의 거짓말이 있는데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고 말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투명하고 신뢰할 만한 통계의 가치와 중요성을 시사하는 말이기도 하다. 현재 서구의 선진국에서는 객관적 조사에 근거한 신뢰도 높은 통계를 바탕으로 국가정책과 경제활동이 이뤄지지만, 개발도상국은 통계가 빈약하거나 믿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지식공유 사업차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를 방문했을 때 발표된 통계가 없어 담당자가 수첩을 꺼내 불러주는 숫자를 받아 적기도 했고, 다른 나라 통계를 역추적해 그 나라의 교역실적을 추정하기도 했다. 국가가 계획해 수요와 공급을 맞춘다는 북한에서 연례행사처럼 식량 부족이 일어나는 것은 생산능력도 모자라지만 기초적인 통계가 부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선 대한민국에서 최근 통계에 대한 논란과 시비가 잦았다. 첫째, 정부가 스스로 만든 통계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말과 행동을 했다. 지난달 전년대비 86만명 늘어난 비정규직 숫자를 발표하면서 통계청장이 실제로는 그보다 적게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직접 브리핑을 하고, 자료에는 이전의 통계와 직접 비교할 수 없다는 문구를 13번이나 넣었다. 도대체 그런 통계를 예산까지 들여 왜 만들었는지 의문이다. 통계의 기본 목적 중 하나인 추세 파악을 위해서라도 비교 가능한 통계를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통계청의 본분일 것이다.



둘째, 통계 ‘체리피킹(cherry picking)’을 했다. 원래 과수업자들이 좋은 과일만 골라 보여주며 소비자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 데서 유래된 말인데, 통계 중에서 유리한 부분만을 부각해 실제보다 장밋빛 모습으로 비치도록 한 것이다. ‘한국 경제성장률이 30-50클럽 국가 중 1~2위를 차지한다’는 정부의 홍보자료가 대표적인 예다. 국민소득 3만달러와 인구 5,000만명 이상의 국가를 뜻하는 30-50클럽은 국제기구에서 공식으로 분류하는 그룹이 아니다. 그에 해당하는 나라는 미국·일본·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한국 등인데 경제가 이미 성숙한 나라들과 성장률을 견줘 그보다 높은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 최근 ‘고용이 양적·질적으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다는 정부의 진단도 체리피킹이라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취업자가 증가한 것은 맞지만 고령자와 단시간 근로자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실제 체감도와 차이 나는 장밋빛 통계 숫자는 상실감만 불러일으킨다. 통계의 기본에 따라 전체 흐름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셋째, 통계 수치에 매달리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에서 ‘올해 2% 이상 경제성장을 달성하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언론의 표현처럼 정부는 2% 성장률 ‘사수(死守)’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지방교육청의 재정집행률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지키지 못하는 기관에 불이익을 주도록 방침을 정했다. 이러한 조치로 경제의 실체가 달라지면 좋은데 문제는 수치만 바뀌는 경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공공기관의 내년 예산 중 1조5,000억원을 올해 당겨쓰기로 했다는데 수출이 지상과제였던 옛 상공부 시절 연말 실적을 채우기 위해 했던 밀어내기 수출을 보는 것 같아 개운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온라인 데이터베이스에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이 1.954%로 나와 있는데 반올림한 2.0%를 유지하는 일에 목매기보다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것이 맞다.

적절한 비유일지 모르지만 경제통계는 나라 경제의 건강검진표와 같다고 생각한다. 통계청이나 경제 부처는 검진기관의 의사처럼 충실한 통계를 만들고, 수요자인 정책 결정 층에서는 통계의 진단에 맞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올바른 국가통계의 이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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