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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러시아 붕괴 전야, 라스푸틴 피살

황실·국정 농단한 요승





‘1916년 12월30일 상트페테르부르크, 펠릭스 유스포프 공작의 저택. 29세의 젊은 공작은 47세의 손님을 극진하게 모셨다. 손님의 이름은 그리고리 라스푸틴. 국정에 깊게 관여하며 주요 보직 인사에도 영향을 미쳤던 수도자다. 유스포프 공장의 초대 목적은 비선실세인 그를 제거하려는 데 있었다. 치사량이 넘는 청산가리가 들어간 케이크와 와인을 먹고도 라스푸틴은 죽기는커녕 파티를 즐겼다. 벌써 죽었어야 할 라스푸틴 앞에서 기타 연주를 반복하던 공작은 마침내 권총을 쐈다.

총성과 함께 라스푸틴이 쓰러지고 2층에서 대기하던 암살 공모자들이 몰려왔다. 순간 라스푸틴이 벌떡 일어나 공작의 어깨를 잡고 견장을 뜯어냈다. 공모자들은 총을 더 쏴서 그를 쓰러뜨리고는 밧줄로 꽁꽁 묶은 채 얼음을 깨고 강물에 던져버렸다. 사흘 뒤 발견된 시신은 밧줄이 풀려 있었고 사인도 독살이나 총살이 아닌 익사로 밝혀졌다. 시신이 얼음을 긁었던 흔적도 발견됐다. 러시아의 국정을 농단했던 괴승(怪僧) 라스푸틴은 이렇게 죽었다. 암살자들은 관대한 처벌을 받았지만 러시아 왕가는 두 달 뒤 2월 혁명으로 권좌에서 물러났다.



‘제정 러시아를 무너뜨린 요승(妖僧) 라스푸틴’의 최후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설명이다. 10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라스푸틴과 관련된 서적만도 수백권이 나왔지만 사망원인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정체부터 잘못 알려졌다. ‘괴승’ ‘요승’으로 불리지만 신학을 공부하거나 성직을 맡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기밀이 해제된 러시아 문서에 따르면 직접 사인은 이마에 박힌 총상. 확실한 것은 두 가지다. 황실의 비호를 받았으며 사망 소식에 대부분 기뻐했다는 점이다. 농가에서 태어난 떠돌이 수도자로 영적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그는 혈우병을 앓던 황태자를 기도로 치유하며 황실과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황제 니콜라이 2세가 군사령관으로 직접 대독전선(1차 세계대전)에 나간 뒤 황후가 내정을 맡으면서 그는 온갖 추문에 휩싸였다. 황실이 그의 예언에 의존해 국정과 장관 인사는 물론 군사작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지자 귀족들이 그를 처단하기에 이르렀다. 유스포프 공작은 러시아 제 1의 유산상속자이며 황제의 조카사위였다. 독일군에게 연달아 패하며 더욱 깊어진 독일(헤센공국) 출신 황후에 대한 불만, 인사에서 소외된 귀족, 공산주의자 그룹 등 모두가 그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정말 요승이었을까. 러시아 붕괴에 원인을 제공했던 사람들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내세운 대속물이었을까.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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