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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의 '개인용 테크' 마스크…'공동체 보호'를 지향하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24> 마스크

17세기 무렵 유럽선 역병 진료 의사

'까마귀 부리' 모양에 약초 넣고 착용

20세기엔 찬 공기 막는 '면 방한대'로

감기 바이러스 못막고 숨 쉬기만 불편

일각선 "오히려 몸에 해롭다" 지적도

2010년대 들어 미세먼지 확산에 진화

'KF 등급' 매겨 개인 보건용으로 활용

관광객들이 서울 명동의 한 약국 앞에서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서울경제DB




지난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매우 나쁨’ 단계가 며칠 동안이나 이어졌을 때의 일이다. 겨울방학을 마치고 개학을 앞둔 아이에게 마스크를 씌워 보내려고 퇴근길에 집 앞 편의점에 들렀다.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점원에게 물었다. 다 팔려서 남은 것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저녁 9시 무렵의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거리에는 행인들도 많지 않았다. 가로등이 비추는 곳에 짙은 황사가 뿌옇게 드러난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떻게든 마스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하철역으로 두 정거장 구간을 걸으며 편의점이 눈에 띌 때마다 들어가 물었다. 한 시간여를 헤맨 끝에 간신히 펭귄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소아용 마스크 몇 장을 구할 수 있었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자 마스크 품귀 현상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더구나 비교적 단기간에 해소되는 미세먼지에 비해 사태가 길어질 것에 대비해 사람들이 마스크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시작하자 품귀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물량이 달리자 인터넷 쇼핑몰에서 고객의 주문을 강제로 취소해버렸다는 제보가 줄을 이었다. 일부 업자들은 기회를 틈타 평소의 몇 배가 넘는 가격으로 폭리를 취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는 마스크 가격 규제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중국에 수백만 장의 마스크를 지원한 것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한국인도 구하기 힘든 마스크를 중국에다 보내다니!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가 보호 본능으로 나타난 것일까.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와 바이러스의 습격을 맞아 마스크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간단한 장치를 통해 외부 환경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노력은 오래된 일이다.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유행해 1억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방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역병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등장했다. 이들은 17세기 이후 독특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에 가죽 모자를 쓰고 가죽 장갑을 꼈다. 전염병을 앓는 환자와의 직접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까마귀 부리 모양의 마스크가 특징적이었다. 당시 의학 지식으로는 흑사병이 독기(毒氣, miasma)를 들이마심으로써 전파됐는데, 길쭉한 부리 부분에 각종 약초와 허브 등을 채워 넣으면 이를 중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병 의사들의 기괴한 모습은 이후 스팀펑크 등 대중문화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병 의사들의 마스크는 흑사병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있듯이 흑사병은 호흡기 전염병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쥐벼룩을 통해 전파됐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감기 등 호흡기 전염병 예방을 위해 간단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화됐다. 이때 ‘마스크’라고 하면 보통 방한대(防寒帶)를 뜻하는 말이었다. 면으로 만들어진 방한대는 추운 겨울날 차가운 공기를 막아주는 것이 주된 기능이었다. 1932년 한 신문기사는 유행성 감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외출할 때에는 ‘마스크’를 반드시 하고 다닐 것과 집에 돌아온 후에는 양추(양치)를 꼭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권고했다. 하지만 마스크의 효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몇 년 후 같은 신문은 마스크를 “여간 주의를 하고 쓰지 않으면 오히려 몸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쓰지 말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이는 호흡기 전염병의 감염 경로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방한대 마스크는 환자가 기침할 때 나오는 체액을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 정도로 질병을 예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감기에 걸렸을 때 마스크를 쓰는 습관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1969년 홍콩 독감 유행 당시의 언론 보도는 그것이 “2차대전 때의 일본식”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은 그 효과에 대해 오히려 해롭다고 단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기 바이러스는 면 마스크를 쉽게 통과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숨쉬기만 불편해져 득보다 실이 많다는 설명이었다. 언론에서 마스크 사용의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정보성 기사를 주기적으로 내보내야 할 정도로 해방 이후 한국인들은 감기와 독감 등 호흡기 전염병이 유행할 때마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마스크가 다시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2010년대 이후 미세먼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부터였다. 이때 본격적으로 등장한 보건용 마스크는 예전의 면 방한대에서 진일보한 제품이었다.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KF(Korea Filter) 등급은 0.6㎛ 크기의 입자를 걸러주는 비율을 나타낸다. KF80 마스크는 미세입자를 80%까지 걸러준다. 제대로 착용하기만 한다면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내 코와 입으로 들이마시는 공기의 질을 어느 정도는 확보할 수 있다. KF94나 KF99 마스크를 사용하면 보다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마스크는 근본적으로 개인용 테크놀로지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마스크를 나눠 쓸 수는 없다. 더구나 마스크는 마스크를 쓰게 된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지금 당장 숨 쉴 만한 한 줌의 공기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이를 두고 ‘공기풍경 2019’의 필자들은 “각자도생의 공기기술”이라고 부른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서울 명동 거리를 걷고 있다./연합뉴스


같은 보건용 마스크이지만 미세먼지의 마스크와 코로나바이러스의 마스크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현재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이유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침방울을 매개로 전파되는 바이러스가 내 몸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미세먼지의 마스크와 마찬가지로 “각자도생의 공기기술”이라 할 만하다. 다른 한편으로 마스크는 기침 증상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문제의 근원이 된 자신으로부터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마스크는 내 몸속의 바이러스가 확산돼 질병이 전파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각자도생의 이기심이 아니라 공동체를 보호하려는 마음이다. 이는 테크놀로지의 의미가 주어진 맥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마스크라는 사물 자체가 각자도생의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호흡기 감염병이 유행하고 있는 지금 마스크 테크놀로지가 갖는 의미는 후자에 방점이 찍혀야 하지 않을까. 1930년대와 1960년대 전문가들이 권고했듯이 마스크가 질병 예방에 큰 효과가 있다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다. 이는 마스크 기술이 상당히 발전한 2020년에도 적용될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국민 예방수칙’에 따르면 마스크 착용은 “기침 등 호흡기 증상자”에 대해서만 권고하고 있다. 이미 질병을 갖고 있다면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별다른 증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는 손으로 얼굴을 만지는 습관을 고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누로 손을 깨끗하게 씻는 편이 훨씬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꼭 써야겠다면 마스크가 얼굴에 밀착될 수 있도록 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내렸다 올렸다를 반복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 마스크를 손으로 만지면서 오히려 병원균이 호흡기로 침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침 침방울에 대한 물리적인 차단막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굳이 KF94 등급이 아닌 방한용 마스크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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