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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공포'의 습격…2011년, 불안감도 피폭됐다 [최형섭의 테크놀로지로 본 세상]

<21>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일본 후쿠시마 재난 이후

 주변국 주민들도 '계측기' 보편화

 생활 속 예상치 못한 방사능 감지 등

 허용치 이하라도 '불안감' 갈수록 팽배

 '방사선량 노출' 속 시원한 과학적 증명 안돼

  국민 몸·마음에 남은 상처 보듬는 정책 필요





지난 2011년 11월의 어느 날 한 서울시민이 차를 타고 노원구 월계동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이면도로를 지나고 있었다. 서쪽으로는 우이천이 지나고 동북쪽으로는 초안산이라는 야트막한 녹지가 펼쳐진 살기 좋은 지역이었다. 갑자기 차 안에서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던 방사능 계측기에서 예기치 않은 이상 신호를 보낸 것이다. 그 시민은 근처에 차를 세워두고 경고음이 울린 근방을 수색해나갔다. 아스팔트 포장이 된 도로 위에서 일정 선량 이상의 방사능이 감지됐다. 맨홀 뚜껑 위에서는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스팔트가 문제인 듯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또 다른 시민은 방사능의 종류를 확인할 수 있는 핵종분석기를 들고 나왔다. 분석 결과 세슘-137이었다. 그들은 곧바로 이 사실을 노원소방서에 신고했다.

서울 동북부 주택가에 어떤 연유로 핵분열 시 발생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인 세슘-137이 검출된 것일까. 시민들이 항의하자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유입 경로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 문제가 된 도로는 2000년에 포장됐는데 당시 도로포장을 맡은 업체는 그로부터 3년 후에 폐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해당 업체가 시공에 사용한 골재의 출처에 대한 정보는 남아 있지 않았다. 발생 원인이 오리무중에 빠진 가운데 방사성 물질에 노출된 시민들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논쟁이 일었다. 정부 측 과학자들은 인근 주민들이 받은 방사선량이 연간 선량한도에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스팔트 도로 안에서 차폐 효과가 있으므로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환경단체 측 과학자들은 아무리 적은 방사선량이라도 건강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 와중에 문제가 된 아스팔트는 재빠르게 철거됐다.

한국에서 방사성 물질이 초미의 관심사가 된 배경에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놓여 있었다. 불과 6개월 전인 2011년 3월11일 오후2시46분 일본 도호쿠 지방 해안으로부터 약 70㎞ 떨어진 해저에서 규모 9.0이라는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이 지진으로 방출된 에너지는 진앙 부근의 바다를 크게 출렁이게 했고 곧 40m가 넘는 높이의 해일이 해안가를 덮쳤다. 고층빌딩 높이의 바닷물은 해안 도시를 덮친 후 내륙 약 10㎞ 지점까지 밀려들었다. 해일의 직격탄을 맞은 지점은 이와테현 미야코라는 도시였다. 미야코에는 해일에 대비한 방파제가 설치돼 있었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 높이의 방파제’로 등재된 방파제였지만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 번도 관측된 적이 없는 최대 규모의 지진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밀려든 바닷물의 거대한 에너지는 인간이 쌓아온 문명을 한순간에 종잇조각처럼 쓸어버렸다.

더 큰 문제는 일본 동북부 지역에 여러 기의 원자력발전소가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후쿠시마현 해안가에는 6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 중이었다.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하자 원전은 매뉴얼에 따라 일제히 가동을 중단했다. 하지만 곧 해일이 밀려들었다. 발전소는 최대 5m 높이의 해일에 견디도록 설계됐는데 이날 밀려든 해일은 그 세 배가 넘는 것이었다. 밀려든 바닷물에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침수됐다. 최소 전력이 사라지자 온도가 점점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배터리 전원이 가동하게 돼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침수된 배터리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전원을 완전히 상실한 냉각펌프가 작동을 멈추면서 원자로 내부 온도가 급상승해 이른바 ‘멜트다운’, 즉 노심용융 상태가 됐다. 이어진 몇 차례의 수소 폭발과 방사능 오염수 누출로 고농도 방사성 물질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의 전경. /연합뉴스


일본에서 거대한 원전 사고가 일어나자 이웃 나라인 한국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들이었다. 이들은 2011년 8월부터 ‘차일드세이브’라는 온라인 카페를 통해 생활방사능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활동을 이어나갔다. 일부 회원들은 100만원 정도 하는 휴대용 방사능 계측기를 구입해 일상적으로 측정한 결과를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처음에는 최소한 내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에 존재할지 모르는 위험요소를 확인하겠다는 개인적 동기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많은 수의 시민들이 방사능 계측기를 손에 넣자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상 현상들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서두에서 소개한 월계동 아스팔트 소동은 그중 하나였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는 한국인들에게 생활 속 방사능을 자각하게 했고 그를 통해 2000년에 시공된 도로에 방사성 물질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렇듯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은 우리에게 한층 더 가까운 일상적 공포의 대상이 됐다.

많은 이들에게 방사성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은 공포의 대상이다. 방사선은 사람의 지각으로 직접 인지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고농도에 노출되면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서는 1945년 원자폭탄 투하 이후 수많은 피폭자에 대한 종단 연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원자력발전소 역사상 최악의 사고였던 1986년 체르노빌 사고 피폭자들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후쿠시마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의 양과 확산 정도에 따라 어느 정도의 영향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우려 섞인 관심을 보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방사선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실제로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노출되는지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종일 지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따라서 방사선 노출 방식에 대해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예상 피폭량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나아가 연간 허용한도(보통 1m㏜=1,000μ㏜) 이내의 방사선 노출이 실제로 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된다. ‘후쿠시마 인근 8개 현에서 잡힌 수산물을 먹으면 내게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들에 대해 과학은 아직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여러 주장과 억측이 이어지게 하는 배경이 됐다. 한편으로 일본 정부는 방사능의 영향을 최대한 축소해 표현한다. 후쿠시마 사고가 있고 약 2년 반이 지난 2013년 9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후쿠시마에 대해 걱정하시는 부분은 제가 보장하겠습니다. 상황은 통제되고 있습니다. 도쿄에는 어떤 악영향도 지금까지 미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미칠 일은 없습니다.” 도쿄에서 올림픽을 개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강력한 선언이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피재민들과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엄청난 규모의 재난으로 수많은 도호쿠 지방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고 일부는 여전히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돌아온 주민들도 표토층 수 ㎝를 퍼내는 ‘제염(除染) 작업’을 한 공간에서 마음 한편에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재난이 우리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면 방사성 물질과 관련된 재난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안전하게 차폐됐어야 할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그대로 그 흔적이 남는다. ‘연간 허용기준 이하’의 방사선량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일본 도호쿠 지방 주민들의 마음에는 그들의 불안감과 슬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원망이 남는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오염 냉각수는 해류를 타고 인근 국가 주민들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다. 이 문제에 대해 과학이 최종적인 해답을 줄 수 없다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최대한 보듬는 정책을 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 아닐까. /서울과기대 교수·과학잡지 ‘에피’ 편집위원

최형섭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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