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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몰카’ 공포에 벌벌 떠는데…정작 관련법은 국회서 낮잠

'보조배터리 모양 카메라' 발견 등

갈수록 교묘해져 몰카 공포 확산

구매실명제 등 추진되다가 폐기

"21대국회 피해자 인권 생각해야"

경찰청 사이버수사과 관계자가 숙박업소 헤어드라이기 거치대에 설치된 초소형 몰래 카메라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전자제품 매장. 안으로 들어서자 매장 한편에 진열된 볼펜과 수첩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자제품 매장에서 웬 필기구까지 팔고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 “카메라 보시게요?”라며 점원이 말을 건냈다.

구매 의사를 밝히자 몇 시간짜리의 동영상 녹화가 필요한지부터 고정형과 이동형 중 어떤 식으로 촬영할 건지 등을 꼼꼼히 물어본 뒤 맞춤형 제품을 추천했다. 다만 어디에 쓸 건지에 대해선 전혀 묻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이동식저장장치(USB)부터 필기구, 시계, 안경에 이르기까지 감쪽같이 속을 수밖에 없을법한 위장형 몰래카메라들이 매장에 가득했다.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의 한 건물 입구에 ‘몰카’라고 적힌 전광판이 검정색 테이프로 가려져있다. /김태영기자


최근 공영방송국 건물 화장실에서 휴대용 보조배터리 모양의 불법촬영장치가 발견되면서 여성들의 ‘몰카 공포’가 재연되고 있다. 특히 각종 생활용품에 카메라 렌즈를 부착한 일명 ‘위장형 몰카’가 기승을 부리지만 정작 이를 규제할 대책은 수년째 감감무소식인 상황. 몰카 범죄 근절을 위해선 판매자와 구매자를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온라인 구매가 활성화되면서 요즘은 굳이 용산전자상가나 세운상가와 같은 전자제품 매장을 찾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이면 몰카를 구매할 수 있는 세상이다. 실제 온라인에서 판매 중인 위장형 카메라는 무선공유기나 화재경보기 모양까지 실로 다양하다. 어떤 목적으로 사용될지도 모르지만 아무런 인증절차 없이 누구나 간단히 구입할 수 있는 셈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공공화장실에서 종로구청 안심보안관들이 몰래카메라 등 불법촬영 장비를 검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몰카 구매가 갈수록 손쉬워지면서 불법촬영 성범죄는 가파르게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성폭력범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4분기 956건이던 카메라 등 이용촬영 범죄는 4·4분기 1,746건으로 1년도 안 돼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는 모텔 객실 내 TV 셋톱박스와 헤어 드라이기에 초소형카메라를 숨겨 투숙객 영상을 성인사이트에 실시간 중계한 일당이 검거되기도 했다. 위장형 카메라는 발각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시민들은 불안감을 보였다. 직장인 박모(28)씨는 “얼마 전 사건을 접하곤 보조배터리 모양의 카메라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며 “몰카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사례가 많을 텐데 어떤 식으로든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위장형 카메라 자체를 불법화하기는 힘들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누군가를 몰래 촬영하는 행위가 모두 처벌 대상으로 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현삼 서한파트너스 변호사는 “성범죄처럼 촬영 대상에게 심각한 피해를 입혔을 때 처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판매업자들은 억울함을 토로한다. 한 몰카 판매업체 대표는 “카메라 구매고객 중에는 경찰 등 수사기관이 가장 많다”며 “왕따나 갑질피해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울면서 구입을 문의하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초소형카메라 자체를 죄악시하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7년 서울지방경찰청이 불법 유통되는 위장형 카메라를 압수해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장형 카메라가 범죄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는 도입 논의가 수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구매실명제’와 ‘판매등록제’ 도입을 포함한 ‘변형카메라 관리에 관한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폐기됐다. 실효성이 없다는 산업 진흥 논리에 묻혀 정작 몰카 피해자들의 고통은 외면받은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첨단 범죄일수록 초기에 대응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21대 국회는 피해자 인권침해를 줄이기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선미 의원실 관계자는 “몰카가 처음 발견됐을 때 구매자를 특정할 수 있으면 수사속도가 빨라지고 나쁜 의도로 구입하려는 사람들도 줄어들 것”이라며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재발의하겠다”고 밝혔다./김태영기자 young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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