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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신바람 난 트럼프 조력자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인종차별 반대시위 강제 해산에

공화당선 일방두둔·회피로 일관

트럼프 거짓말 이대로 방치하면

美 더 어두운 길로 들어설 수도

파리드 자카리아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 독재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 방치할 경우 트럼프는 분명히 법과 전례는 물론 헌법까지 무시한 채 멋대로 행동할 것이다. 대통령인 그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본인의 비리에 관한 조사를 덮었고, 그의 사주를 받고 범법행위를 저지른 측근들을 사면했으며, 자신에게 편견을 갖고 있다고 믿는 소셜미디어와 언론 기관에 제재를 가하려 든다.

필자와 사적으로 만난 트럼프의 최측근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과도한 언행을 늘 체크하고 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미국 시스템을 가능케 하는 동력은 마술이 아니다. 미국의 시스템은 노골적인 권력남용에 정면으로 맞서는 판사와 관료, 장군, 그중에서도 특히 정치인과 같은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 최근 군 지도자들을 포함한 일부 인사들은 원칙대로 행동했다. 그러나 도저히 메꿀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 뚫린 바닥 모를 구멍이 그것이다.

지난 1일 저녁, 백악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라파예트 스퀘어에서 폭동진압 복장을 갖춘 경찰이 연막탄과 고무탄환, 페퍼볼 등 진압용 무기를 사용해 헌법에 보장된 평화적 집회를 벌이던 시위자들을 강제 해산시켰다. 당시 시위자들은 통금을 어기지도, 폭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경찰이 법을 준수하는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이유는 홍보용 사진을 찍기 위해 라파예트 스퀘어 건너편의 교회로 걸어간 대통령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교회 앞에서 성경을 치켜든 채 사진을 찍었다.

국내의 모든 뉴스채널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된 위험스런 공권력 남용 사례와 관련해 코멘트를 해달라는 기자들의 요청에 대통령의 우군들은 어정쩡한 회피성 반응을 보이거나 일방적으로 트럼프를 두둔했다. 존 케네디 상원의원(공화. 루이지애나)은 “당시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코멘트를 하지 않겠다”고 피해 가려다 “앞으로도 본인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 국제적인 중대 사안에 대해 침묵할 것이냐”는 조롱 섞인 질문을 받았다. 미트 롬니(공화. 유타), 론 존슨(공화. 위스콘신), 마이크 리트(공화. 유타) 등 몇몇 상원의원들은 “현장 화면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는 이유를 들어 즉답을 피했다. 공화당 상원의원인 로브 포트만(오하이오)과 마이크 엔지(와이오밍)는 “점심에 늦었다”는 황당한 핑계를 남긴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몇몇 공화당 의원들은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시도했지만 대다수의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트럼프를 감쌌다. 과거 트럼프를 “파렴치하고” “병적인 거짓말쟁이”로 매도한 바 있는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 텍사스)은 힘을 남용한 유일한 당사자는 “시위자 자신들”이라고 말했다.

사학자인 앤 애플바움은 ‘더 애틀랜틱’에 실린 기고문에서 ‘조력’은 대단히 드문, 기존합의에 대한 절조있는 비동의(principled dissent)지만, 실질적으로는 흔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는 폴란드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걸작으로 꼽히는 넌픽션 ‘사로잡힌 정신’(The Captive Mind)을 빌어 조력이 제공하는 안도감을 설명한다. 조력은 가슴에 품고 있는 이상과의 투쟁이나 내부갈등이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미워시에 따르면, 일단 자신이 내린 결정과 타협한 조력자들은 “음식을 맛있게 먹고, 활기차게 움직이며, 얼굴에 원래의 화색이 돌아온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수월하게 긍정적인 글을 써 낸다.”



조력자에 대한 미워시의 묘사는 공화당의 린제이 그레이엄 상원의원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레이엄 의원은 지난 2015년, 도널드 트럼프를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을 두려워하는, 종교적으로 편협한 인물”로 매도했다. 그러나 2018년, ABC방송의 아침 토크쇼 ‘더 뷰’에서는 당시 트럼프와 관련해 자신이 했던 발언 중 그 어느 것도 이젠 믿지 않는다며 허풍스런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애플바움은 미워시에 대해 “동조(conformity)의 즐거움, 그리고 이 같은 순응이 주는 마음의 가벼움을 인정한 몇 안 되는 작가들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어 “미워시는 이 같은 순응이 조력자들이 가진 개인적, 혹은 전문적 딜레마를 해결해준다는 점도 놓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에플바움은 트럼프가 어떻게 거대한 공모의 띠를 만들어냈는지 설명하면서 그의 취임 직후 사건을 거론했다. 취임식을 마친 뒤 불과 며칠 후, 트럼프는 자신의 취임식 인파가 역대 최고라는 억지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백악관 공보비서에게 공개적으로 거짓말을 하도록 했고, 공원 관리국에 사진 조작을 압박했다. 애플바움은 이를 과거 소련이 정기적으로 내놓았던 선전용 포스터에 비유한다. 소련 정부는 자국민이 믿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면서도, 사소한 일을 요란스레 과장한 포스터를 끊임없이 제작했다. “포스터의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짜 목적은 거짓을 당당하게 공포하고, 널리 퍼뜨릴 수 있는 당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당이 선전 포스터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믿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거짓말쟁이를 두려워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프로세스가 트럼프 집권기에 어떻게 작동했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다. 처음엔 취임식이라는 작은 일로 시작했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트럼프는 자신이 전국 득표수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앞섰다고 주장했다. 수 백만 명의 클린턴 지지자들이 불법적으로 투표에 참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자신의 득표수가 훨씬 많았다는 억지 논리다. 뿐만 아니다. 그는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를 결국 중국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우겼다. 앨라배마가 허리케인 도리안의 위협에 노출될 것이라는 엉터리 예측도 내놓았다. 풍차가 암을 초래한다거나,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을 조사하라는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백악관 입성 이후 트럼프는 거의 2만 건에 달하는 거짓말, 혹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발언을 내놓았다. 처음에는 다소 주저하는 듯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벼운 마음’으로 속임수를 정당화하는 거짓말을 스스로도 깜짝 놀랄 만큼 쉽게 늘어놓았다.

미합중국이 지금보다 더욱 어두운 길로 들어선다면, 그에 따른 비난의 상당 부분은 트럼프의 신명 난 조력자인 공화당 지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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