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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부서진 이름' '엄마누나 살자던 강변'이 그림됐다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금강산화가' 신장식 등 6인 35점

김소월 詩를 화가들 재해석한 詩畵

신장식 ‘초혼’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중략) 붉은 해는 서산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하략)”

김소월(1902~1934)의 시 ‘초혼’을 읽고 화가 신장식은 시인을 그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젊은 시절의 사진 한 장으로 남은 소월의 얼굴을 보니 선 채로 그 자리에 돌이 되어버린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다”는 화가는 북쪽 출신인 시인의 얼굴에서 금강산과 장전항을 떠올렸고 남쪽의 동해와 석양도 그려 넣었다. 그는 “그림을 통해 남북 분단으로 산산이 부서진 한반도를 연결하고자 했다”며 “분단국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대한 바람을 담았다”고 밝혔다. 신 작가는 지난 2018년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평화의 집 회담장에 걸린 ‘상팔담에서 본 금강산’을 비롯한 금강산을 연작으로 유명하다.

완성된 그림은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이 열리는 종로구 광화문 교보아트스페이스에 걸렸다. 1920년 3월, 종합문예지 ‘창조’ 제 5호에 ‘낭인(浪人)의 봄’ ‘그리워’ 등을 발표하며 김소월이 등단한 것을 기념해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한 시화전이다. 소월의 시 ‘님의 노래’와 ‘봄비’ ‘산’ ‘눈’ 등도 그림이 되어 함께 전시 중이다. 신장식을 포함한 6명의 화가가 참여해 김소월의 시 35편을 그림으로 재해석했다.

교보문고와 대산문화재단이 공동주최해 광화문 교보문고 내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열리고 있는 ‘김소월 등단 100주년 기념 시그림전’ 전경. /조상인기자


정용국 ‘봄밤’


“실버드나무의 거무스레한 머릿결인 낡은 가지에/ 제비의 넓은 깃 나래의 감색치마에/ 술집의 창 옆에, 보아라, 봄이 앉아있지 않는가”로 시작하는 소월의 시 ‘봄밤’은 화가 정용국의 손끝에서 수묵으로 피어났다. 한숨과 설움이 뒤섞인 ‘보드라운 습기’의 봄 기운이 먹을 따라 한지에 스며들었다. 정 작가는 “머릿결 같은 실버드나무가지를 에워싼 쓸쓸하고 눅눅한 공기와 해가 저물어 밤이 된 풍경은 서늘하다 못해 먹먹한 기분”이라며 “소월이 시를 쓰던 1921년 평북 정주의 풍경을 더해 봄과 습기와 밤이 만난 그림이 탄생했다”고 소개했다.

작품들은 글 쓰던 100년 전의 시인을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향수를 자극한다. 김소월의 대표 시 ‘엄마야 누나야’를 읽고 화가 김선두는 어릴 적 봄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의 풍금에 맞춰 부르던 동요 ‘엄마야 누나야’와 함께 솔밭 오두막에 살던 친구와 냇가에서 피라미·붕어·참게 잡으러 다니던 추억이 화폭에 내려앉았다. 그는 ‘못 잊어’ ‘개여울’ ‘접동새’ ‘산수갑산’ 등의 시를 그림으로 풀어내며 자신은 물론 우리 공통의 서정성을 되짚었다.



김선두 ‘엄마야 누나야’


박영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그림 작업하느라 수 개월을 혼자 지내던 화가 박영근은 “봄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이 사무치게 그리울 줄도, 밝아도 쳐다볼 줄도, 그것이 설움일 줄도 미처 몰랐다는 김소월의 시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 새삼스레 읽혔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볼 수 없다는 처절한 슬픔 때문이었다. 적막한 밤 홀로 우뚝 선 소나무를 비추는 환한 달 아래로 기러기가 날아간다. “소나무와 아버지·어머니·자식을 상징하는 기러기 세 마리의 대비를 통해 달밤의 고독함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배달래 작가의 그림은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진달래꽃’이다. 화가가 붙인 제목은 ‘메마른 눈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임에게 진달래꽃 아름 따다 뿌려주며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겠다 다짐하는 시적(詩的) 화자와 달리 뾰족뾰족 하얀 가시를 곳곳에 뿌려놓은 그림에는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솔직한 마음이 보인다. 배 작가는 “날카롭고 어두운 가지와 잎새는 소월이 살았던 암울한 시대를 이겨내고자 하는 울부짖음”이라며 “떠나는 임에 대한 사랑과 민족에 대한 애틋함 처절함”을 담았다고 설명한다.

배달래 ‘메마른 눈물’


장현주 ‘옷과 밥과 자유’


장현주 화가의 ‘옷과 밥과 자유’는 “제철음식으로 차린 푸짐한 밥상”같은 그림이다. 작가는 털과 깃 있는 새, 곡식 영근 논밭을 바라보며 옷도 밥도 없는 자신을 토로하고 짐 지고 고개 넘는 나귀처럼 삶이 버거운 시 속 화자를 위해 “먹지도 입지도 못한 채 떠도는 삶의 나그네가 꿨던 행복한 꿈을 역설적으로 표현해 그의 고단함이 사라지고 삶의 고갯길을 흥얼거리며 넘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라 소개했다. 저항시인 김소월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감상자 모두를 위한 위로의 선물이다. 전시는 30일까지 열린 후 다음 달 5일부터는 교보무고 합정점 아트월로 옮겨간다. 이들 그림을 문학평론가이기도 한 홍용희 시인이 엮어 쓴 시화집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가 함께 출간됐다.
/글·사진=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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