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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IB씨] ‘열린’ 자본시장과 그 적들

<4> 헤지펀드, 무자본M&A, 그리고 투자조합

[편집자주]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Makers and Takers)라는 책이 있다. 우리 말로 풀어쓰자면 제조업은 ‘(가치를)만드는 자’, 금융은 이 가치를 ‘뺏는 자’ 정도가 된다. 이 말엔 가치 판단이 녹아 있다. 자본주의 태동 이전부터 금융은 늘 뺏는 자로 그려져 왔다. 1598년에 출판된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수전노로 그려진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금융 없이 굴러가지 않는다. 은행의 자금 중개 기능이 없다면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도, 쓰는 돈과 버는 돈의 시차가 있는 다른 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물론 금융이 2008년처럼 위기의 진원지가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지렛대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결국 얼마나 알고 통제하느냐에 따라 악이 되기도 하고, 선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친절한 IB씨’는 금융의 첨두(尖頭)라 할 수 있는 투자업에 대한 대중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획한 코너다.





美 내부자 거래에 벌금만 1.9兆... 우리는 얼마나 엄격한가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 1화 중에서

척 로스 뉴욕 남부지검 검사장 사무실에 ‘불청객’ 아리 스피로스가 찾아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불법 금융 거래를 감시하는 그가 손에 든 것은 서류 한 뭉치. “이건 큰 건이야(This is big)!” 한 회사의 내부자 정보를 이용한 듯한 미심쩍은 거래가 ‘월가의 거물’인 보비 액슬로드를 향하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로스 검사장은 겉으론 냉담했다. 기소할 만하면 연락하겠다고. 장면이 바뀌고 로스는 부하직원 앞에서 이렇게 다짐한다. 액슬로드가 ‘전성기의 마이크 타이슨’, ‘민중의 영웅’이지만 잡을 수 있는 때가 됐을 때, 질 가능성이 없을 때 잡겠다고. 이후 드라마는 월가를 움직이는 헤지펀드 수장을 집요하게 쫓는 뉴욕 남부지검 검사장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SAC캐피탈은 1992년 2,500만달러로 시작해 20년 평균 연 30%라는 경이적인 수익률로 운용자산(AUM) 규모를 160억달러로 키운 월가의 전설적인 헤지펀드다. 미국 드라마 빌리언스의 현실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설립자인 스티브 코언(사진)은 비공개 정보와 공개 정보를 끼워 맞춰 투자 판단을 내리는 이른바 ‘모자이크 이론(Mosaic THeory)’으로 돈을 벌었다. 결국 그는 내부자 거래를 적발한 뉴욕 남부지검과 형량 조정를 통해 18억달러의 벌금을 내는 대신 형사 기소를 피했다. 코언은 개인 순자산만 2017년 기준 130억달러(약 15조원)로 미국에서 30위권에 꼽히는 부자다. 야구구단 뉴욕 메츠의 주주로도 유명하다. (최근 지분 80%를 인수하려다 실패한 바 있다.)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빌리언스는 2013년 18억달러(약 1조9,000억원)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벌금을 낸 SAC캐피탈의 스티븐 코언과 프리트 바라라 뉴욕 남부지검장의 법정 공방을 극화한 드라마다. 1조9,000억원이라니, 얼마나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까.(벌금 규모는 형사 기소를 피하기 위한 대가로 SAC가 뉴욕 연방검찰과 합의한 금액이다.) 죄명은 내부자 거래! SAC캐피탈은 컴퓨터 제조사인 델의 직원으로부터 실적이 예상보다 나쁠 것이란 정부를 두 차례 입수한 뒤 공매도로 큰돈을 벌었다. 코언 자신도 미리 보유 주식을 처분해 손실을 회피했다는 혐의를 받았다.(관련해선 실라 코하카의 책 ‘블랙 에지’에 보다 상세히 나온다.)

미공개 정보 이용이 그렇게까지 큰 죄일까.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권에서는 내부자 거래를 ‘악질 범죄’로 취급한다 . 2·3차 정보 수령자도 부당이득을 모두 환수할 만큼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공개된 정보를 바탕으로 추정한 ‘기업가치(EV)’에 베팅하는 주식시장의 근간을 흔드는 범죄라고 판단하고 있는 때문이다. (이게 범죄가 아니라면 당신이 주식에 투자할 때 참고하는 주가수익비율(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 등도 하등 쓸모가 없어진다.)

갸우뚱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미국에서 가장 큰 벌금을 때려 맞은 SAC캐피탈의 혐의는 지난 4월 검찰이 청구한 문은상 신라젠 대표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미공개 정보 이용)와 같다!!(다만 기소 당시에는 문대표가 아닌 신모 전무에만 미공개 정보이용 혐의가 적용됐다.) 헌데 신라젠 사건은 정치권의 연루 여부가 집중 조명을 받고 있지만, 내부자 거래를 두고 이를 범죄라는 손가락질 하는 이는 찾기 힘들다. 이에 관련해선 “사람들에게 피해를 다중으로 준 거야. 그런 사안 같은 경우는 빨리 정확하게 수사해서 피해 확산을 막을 필요도 있는 거고. (중략) 그거에 대해서는 응분의 책임을 제대로 물어야 적어도 사회가...”라는 한동훈 검사장의 말만 돋보인다.

법 체계가 다르다지만, 국내에서 내부자 거래로 패가망신했다는 사례를 찾기 힘든 건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이다.(아 물론 코언은 지금도 잘 먹고 잘살고 있다고 지적하면 할 말은 없다.)

사기 횡행 韓 자본시장... 코스닥은 개미 '피'로 굴러간다
우리나라 금융범죄는 미국에 비하면 훨씬 치밀하고 또 흉악(凶惡)하다. 내부자 거래는 그냥 애들 장난 수준. 우선 사례를 보자. 최근 대표이사가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주권매매 거래가 정지된 블러썸엠앤씨라는 코스닥 상장사가 있다. 원래는 에스앤피월드라는 이름의 화장품 제조사였는데 돌연 이름을 바꿨다. 2018년 10월만 하더라도 4,000원대였던 주가가 급작스레 치솟기 시작하더니 불과 6개월 뒤인 2019년 4월 3만원에 육박했다. 2018년 자산규모가 328억원에 매출액 234억원, 영엽손실 1억원을 기록했던 회사 주가 3만원이라니. 지금은 얼마일까. 거래 정지된 지난 5월 28일 종가가 4,555원이다. 한땐 2,000원대까지 내려앉기도 했다.

주가가 널뛴 것은 소위 ‘작전’ 때문이었다. 주가가 폭등했던 2019년 초 당시 박보검과 송중기를 거느리고 있던 블러썸엔터테인먼트(이름이 비슷한 것은 순전히 우연일까)와의 합병설이 마치 사실인 것마냥 떠돌아다녔다. 훗날 공개된 장영준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그는 라임 사태를 게이트 급으로 격상시킨 인물로 평가된다) 녹취록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사람(이모 블러썸엠앤씨 전 공동대표)의 역할은 블러썸엠엔씨를 엔터회사로 만드는 거예요. 시장에서 유명한 M&A 꾼이에요. 이 사람은 책임(이) 주가예요.”



이 작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당이득을 취했을까. 우선 국내 1위 헤지펀드였던 라임자산운용이 있다. 라임은 2019년 블러썸엠앤씨가 발행한 1회차 전환사채(CB) 500억원 규모 중 320억원어치를 인수한다. 피앤엠씨라는 정체불명의 회사가 인수한 뒤 곧바로 라임에 매각하는 방법으로 꼬리표를 뗐다. 당시 CB의 전환가액은 4,965원. 라임은 이 전환사채를 증권사에 단기간에 팔고, 또 사들였다 다시 파는 수상한 거래를 한다. (각 증권사와의 총수익스와프(TRS) 거래니 증거금 대납이니 등등의 복잡한 거래 구조는 몰라도 된다.) 주가가 치솟으면 CB 평가액도 덩달아 오른다. 싼 가격에 산 CB를 비싼 가격에 팔고, 다시 싼 가격에 샀다가 다시 팔았다면 막대한 평가차익을 거뒀을 것으로 추정된다. (평가 기관에 당시 블러썸엠앤씨의 CB 평가가격을 문의했지만, 돌아온 것은 대외비라는 답이었다.)

라임자산운용의 실질적 소유주였던 이종필 부사장(사진). 국내 1위 헤지펀드인 라임은 각종 창의적(?) 방법으로 3년만에 덩치를 운용자산(AUM) 기준 1조원에서 5조원까지 키웠다. 검찰은 코스닥 상장사 리드에 300억원을 투자한 대가로 14억원의 금품을 수수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연합뉴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당시 블러썸엠앤씨는 CB 발행으로 확보한 500억원을 어디다 썼을까. 공동대표를 맡던 지모씨(그가 블러썸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사였다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의 특수 관계 기업을 사들였다. 그것도 고가에. 블러썸엠앤씨가 사들인 블러썸픽쳐스(150억원)와 블러썸스토리(100억원) 모두 지모 대표와 그의 배우자가 이사진에 이름을 올린 기업이다. 100억원 몸값의 블러썸스토리는 당시 완전자본잠식 기업이었다.

아직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어떤 범위까지 포괄하는 지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피의사실 공표!)이라 결론이 어찌 날지는 예단이 어렵다. 실제로 사기적 부정거래가 있었는지 확인된 바도 없다. 다만 이 작전판에서 얼마나 많은 ‘개미’ 투자자가 눈물을 흘렸을지에 관심을 두는 이는, 안타깝게도 없다.

내부자 거래 정도는 우습게 찜 쪄 먹는 세력이 헤지펀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금의 이름표를 뗀 헤지펀드는 ‘범죄의 공생’ 수단일 뿐. 돈 한 푼 안들이고 기업을 사들인 뒤 자산 매각으로 돈을 빼돌리는 무자본 인수·합병(M&A) 세력도 넘쳐난다. 스타트업의 엔젤 투자자 역할을 기대했던 개인투자조합 역시 사채놀이에만 열을 올린다.(최근 편법 증여 논란이 일었던 이스타항공의 모회사인 이스타홀딩스에도 개인투자조합이 돈을 빌려줬다.) 코스닥 시장은 개미들의 피로 돌아간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만큼 작전 세력은 넘쳐난다.

증권범죄 합수단 해체... 이번엔 '패가망신' 선례 나올까
아이러니한 건 우리나라 자본시장은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만큼 ‘열려’ 있다는 점이다. 상장 기업은 물론이거니와 비상장 기업도 사업보고서만 꼼꼼히 뜯어봐도 뭘 하는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특히 전자공시시스템(DART)은 워렌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발송하는 주주편지에 거의 매년 소개되는 단골로도 유명하다. 인터넷만 검색하면 무료로 기업의 모든 정보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나라, 그게 바로 한국이다. (공개되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되레 미공개 정보 정도는 가볍게 뛰어넘는 사기적 부정거래가 판치는 것일까.)

그 어느 나라보다 투명하고, 그만큼 감시가 쉬운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이렇게 혼탁한 이유는 뭘까. 우리나라엔 미국 월가를 견제하는 뉴욕 남부지검처럼, 여의도를 ‘실질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공권력이 없다. 서울 남부지검이 관할하고 있지만 금융조사 1·2부엔 부장검사 2명과 평검사 10명이 전부다. 아 물론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에도 감시 기능이 있지만 코스피 795개사와 코스닥 1,492개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와중에 (뉴욕 남부지검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여의도 저승사자’ 증권범죄 합동수사단마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해체했다. 라임에 이어 옵티머스자산운용 등 헤지펀드의 사기를 포함한 금융범죄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는 와중이었던 만큼 여기저기서 ‘역행’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온전히 검찰과 관련 기관에 시쳇말로 ‘몸빵’할 인력이 부족한 탓만은 아니다. 몸빵으로 작전세력을 골라낸다고 해도 이미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린 뒤의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미국과 다른 것은 여의도에 암약하는 자본시장의 적(敵)들에겐 ‘걸리면 죽는다’는 인식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당국이 라임과 옵티머스자산운용 사태 등을 계기로 1만개 사모펀드를 전수조사하겠다며 조직을 꾸리는 무리수를 두긴 했다. 이 얼마나 ‘농경사회적’ 마인드인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그리고 인력 투입만큼 성과가 나올지 미지수다.)

이종필 라임 부사장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질문은 이랬다. 모 비상장사에 투자를 대가로 돈을 받았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금융기관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1억원 이상의 금품을 받은 경우 무기징역이나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답은 이랬다. 라임 대주주로 자신이 버는 돈이 얼마인데, 그깟 푼 돈 얻으려고 리스크를 감수하겠느냐고. 사실은 이랬다. 검찰은 그의 공소장에 피투자기업(다른 상장기업이다)으로부터 939만원 상당의 샤넬 백 2개와 2,340만원 상당의 IWC 시계 등 14억원의 금품을 받았다고 적시했다. 범법행위에 대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 알뜰살뜰 돈을 챙겼던 셈이다. 두고 볼 일이다. 이번에야말로 걸리면 죽는다는, 그렇게 여의도에 암약하는 작전세력을 효과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지 말이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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