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베이성 친황다오시에는 만리장성과 관련해 ‘맹강녀묘(孟姜女廟)’라는 곳이 있다. 산해관에서 동쪽으로 7㎞ 위치다. ‘맹강녀는 2,000여년 전 진나라 때 사람으로 남편이 만리장성 건설공사에 동원돼 끌려간 후 그를 찾으러 공사현장에 왔다가 이미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래 전제왕조 폭정의 피해자였던 맹강녀 설화는 시대가 지나면서 열녀 이야기로 변질됐다. 가혹한 중노동에 가족을 잃은 슬픔은 뒤로하고 미모에 반한 진시황의 유혹을 물리친 열녀로 이미지가 조작된 것이다. 맹강녀묘는 중국에서 유학 사상이 절정에 달한 송나라 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후 명나라 때인 1594년 산해관을 개축하면서 함께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됐다.
사당에는 맹강녀의 상이 있는데 ‘만고유방(萬古流芳·훌륭한 이름이 후세에 영원히 전해지다)’ 편액이 붙어 있다. 사당 입구 현판에는 ‘정녀사(貞女祠)’라고도 적혀 있다.
중국 역대 왕조는 북방민족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수천년 동안 만리장성을 쌓아왔다. 실제로는 내부에서의 폭정에 대한 시선을 외적 방어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수많은 물자와 인력의 희생이 있었다.
만주족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한 지 50년 가까이 지난 1691년 장성을 수리할 필요성이 실무진에서 제기됐을 때다. 당시 황제인 강희제는 “수리할 필요가 없다. 역대 왕조가 장성을 쌓았지만 전쟁은 끝이 없었고 나라를 지키지도 못했다. 나라를 지키는 도리는 덕을 쌓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글·사진(친황다오)=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