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대선 당시, 필자는 트럼프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했던 사람 중 한명이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서 그가 압도적인 표 차이로 패할 것이라 믿었다. 필자는 유권자들이 그의 실체를 훤히 꿰뚫어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천박하고 속물스러웠으며 대부분의 정책 이슈에 무지했을 뿐 아니라 아주 사소한 일에 대해서조차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병적인 거짓말쟁이였다. 예를 들어 2016년 유세에서 그는 자신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금방 들통이 날 거짓말이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필자가 트럼프의 패배를 확신하는 것은 지난 몇 년 사이에 미국에 큰 변화가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흑인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외국 태생이라는 의혹을 제기해 그에 대한 백인들의 편견을 조장하는 졸렬한 ‘버서리즘(birtherism)’에 편승해 중앙 정가로 진입한 인물이다. 트럼프는 올 8월 백악관에서 가진 대통령 후보 지명수락연설에서도 멕시코인들을 겨냥한 인종주의적 발언을 남겼다. 그것도 모자라 전 세계의 무슬림인에게 미국의 국경을 “완전히 폐쇄하겠다”는 제안까지 곁들였다. 대선 유세 내내, 외국인과 소수계를 향한 그의 수사는 일관되게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필자는 미국인 유권자들이 그의 인종주의적 언행에 맞장구를 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필자는 경기침체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82년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도착했다. 갈색 피부색에 이름까지 이상한 필자에게는 돈도, 연고도 없었지만 이 나라는 두 팔을 활짝 벌린 채 필자를 따뜻하게 맞아줬다. 지금도 필자는 그때 받았던 진정성 넘치는 환대를 잊지 못한다. 필자는 무슬림이었지만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그 같은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식한 적이 없다. 오히려 힌두교 국가인 모국 인도에서 내가 무슬림임을 더욱 강하게 의식했던 것 같다.
아마도 뉴잉글랜드의 대학촌에 파묻혀 지낸 탓도 있겠지만 필자는 트럼프 브랜드의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를 거의 목격하지 못했다. 물론 미국에도 인종주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책이나 신문에서 읽었거나 TV와 영화를 통해 봤을 뿐이기 때문에 실제로 인종주의의 현실적 강도가 어느 정도인지 몰랐다. 따라서 필자는 4년 전 선거에서 트럼프의 승리 가능성을 보여주는 증거를 평가절하했다. 솔직히 말해 그처럼 위험한 인종주의적 세계관을 지닌 인물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난 여전히 그 같은 인종주의자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4년 전에 많은 미국인은 트럼프의 인종주의에 ‘혹해서’가 아니라 그가 내민 위험천만한 인종주의 ‘미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대다수의 미국인이 지난 4년 내내 그를 못마땅해했다는 점이다. 그의 평균 지지율은 공식 집계가 시작된 후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저치를 작성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뉴욕타임스의 선거분석가 네이트 콘이 지적하듯 그는 지난 대선에서 현대 미국사를 통틀어 두 번째로 인기 없는 대통령 후보와 맞붙는 행운을 누렸다. 직접투표에서 힐러리 클린턴에게 뒤졌지만 3개 경합주에서의 아슬아슬한 승리로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정족수를 넘기면서 어렵사리 백악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트럼프가 구축한 동맹체의 일부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우려와 함께 그 안에서 자신이 서게 될 위치에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수완 좋은 돌팔이 약장사의 번지르르한 언변에 쉽사리 넘어간다.
하지만 미국은 변하고 있다. 트럼프의 핵심지지층인 대학교육을 받지 않은 백인들이 미국의 성인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추세다. 반면 조 바이든의 핵심지지기반인 백인 대학졸업자 및 소수계가 미국의 성인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나는 추세다.
뉴욕타임스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의 표밭인 플로리다주의 대학교육을 받지 못한 백인들의 인구는 2016년 이후 35만9,000명이 줄어든 반면 바이든 지지층은 157만7,900명 늘었다. 펜실베이니아의 경우도 트럼프의 지지기반은 43만1,000명이 줄어든 데 비해 바이든의 지지층은 44만9,000명의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한다면 그는 미국이 지구 최초의 ‘보편국가(universal nation)’를 만들려는 장엄한 시도를 해왔다는 사실을 미국민 모두에게 납득시키는 어려운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지금 그 같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흑인과 백인, 토박이와 이민자,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및 이외의 모든 집단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포용해야 한다.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분열적이고 지리멸렬한 작업처럼 보일 수도 있다. 때로는 용어와 정치적 정당성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거나 간단한 합의조차 이루지 못한 채 한동안 제자리걸음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 나라의 국민 한명 한명이 마침내 그들도 아메리칸 드림의 대열에 포함됐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고귀한 노력의 일부다. 건국 이래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아이디어를 꾸준히 확대했고 바로 이것이 미국인에게 과거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뒷걸음질치지 않고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앞으로 전진하도록 만들었다.
필자는 이번에도 위험을 감수하고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을 것이다. 지난 4년간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숱한 일들을 겪었지만 필자는 아직도 미국인의 가슴속에 ‘최상의 가치’가 담겨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 가치에 필자는 다시 베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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