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한 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병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큰 영향을 받았지만 특히 사람과 사람의 대면접촉이 많은 문화와 관광 분야의 타격이 컸다. 싱가포르도 지난 4월7일부터 6월1일까지 ‘서킷브레이커’라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했다. 보건의료 등 필수업종을 제외한 대부분 기업은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식당도 배달이나 포장판매만 허용됐다. 에스플러네이드를 비롯한 주요 문화예술 공연장과 싱가포르 동물원 등 주요 관광시설도 예외 없이 문을 닫았다. 우리 대사관에서도 안전을 고려해 준비했던 여러 문화행사를 취소해야만 했다.
하지만 위기와 기회는 항상 함께 찾아오는 법. 코로나19는 우리에게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문화교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그 첫 시도가 K팝 온라인 페스티벌이다. 기존에는 공연장에 모여 노래와 춤 실력을 겨루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음악에 맞춰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30초 이내의 영상을 찍어 본인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도록 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극복하고 K팝의 리듬과 즐거움으로 싱가포르가 하나 되자는 의미로 모든 응모 영상에 ‘#KpopSGunited와 #StayStrong’ 해시태그를 달도록 했다. 앙증맞은 춤을 보여준 귀여운 어린이와 원더걸스의 ‘Tell Me’ 댄스 실력을 보여준 60대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뜨겁게 호응했다. 특히 200여개에 이르는 K팝 응모 영상에 대한 조회 수는 무려 30만건에 이르렀다.
K팝의 뒤를 이은 것은 한식, 즉 K푸드 온라인 페스티벌이다. 미식가들의 천국이라는 애칭이 무색하지 않게 싱가포르인의 한식 사랑도 각별하다. 가족과 함께 집에서 불고기와 달고나 커피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김치를 담가 먹거나 삼계탕을 끓이는 영상도 응모했다. 유창한 한국어와 함께 떡볶이와 치킨을 즐기는 ‘먹방’ 영상도 인상 깊었다.
어찌 일방적으로 우리 것을 사랑해달라고만 할 수 있으랴.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우리 대사관은 방역의 최일선을 지키고 있는 싱가포르 셍캉병원 의료진에 한식 도시락을 기부하기로 했다. 취지에 공감해 현지 자선 플랫폼 ‘마주라 운동’에서 한식 도시락 배달에 도움을 줬다. 지금도 셍캉병원 의료진이 도시락에 대한 인증사진과 함께 보내온 감사의 메시지를 잊을 수 없다.
주한 싱가포르 대사관 역시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노력에 마음을 함께했다. 에릭 테오 대사는 방역에 헌신한 우리 의료진을 격려하고자 대구동산병원을 방문해 싱가포르 특산품인 비첸향 육포와 카야 잼 등을 선물하기도 했다. 코로나19 속에서 서로 배려하는 양국의 마음이 서로 통한 것이다.
양국의 협력은 9월2일 외교장관 간 통화를 통해 ‘한국과 싱가포르 간 입국절차 간소화(신속통로) 합의’이라는 큰 결실로 이어졌다. 양국의 기업인 등 필수인력이 격리 조치 없이 상대국가에 입국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우리가 싱가포르와 합의한 신속통로는 중국·아랍에미리트(UAE)·인도네시아에 이은 네 번째로서 양국 관계가 그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추석 기간 매년 1,200만명 이상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싱가포르의 대표 관광명소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양국의 우정을 상징하는 등불이 켜졌다. 옛 조선 왕가의 모습을 보여주는 ‘왕가의 산책’ 등(燈)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 ‘중추절 축제’에 처음 초청돼 특별 전시된 것이다. 양국이 함께 기념하고 축하하는 중추절 밤에 아름다운 슈퍼트리 옆에서 빛을 밝힌 ‘왕가의 산책’은 심화하는 양국의 연대와 협력을 상징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양국의 두 정상도 이 계기로 서로 인사를 교환했고 싱가포르 언론과 우리 교민 사회에서도 큰 관심을 보여줬음은 물론이다.
이제 한국과 싱가포르는 보건의료 분야의 협력을 통해 코로나19를 함께 극복하는 새로운 미래도 그리고 있다. 의료선진국인 우리나라와 아세안에서 가장 뛰어난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싱가포르 간 보건협력은 코로나19 대응은 물론 국제사회가 보편적이고 공평하게 코로나19 백신에 접근해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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