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욕의 역사를 감내한 서울 용산 미군기지의 일부 부지가 마침내 시민의 품으로 귀향하는 첫 발을 뗐다 .
용산 기지는 1882년 임오군란을 진압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청나라 군대가 주둔한 이후 청일·러일 전쟁에 승리한 일본군에 점령당했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 한반도에 진주한 미국도 용산 기지를 전략적 거점으로 활용했다. 한미가 용산 미군기지 반환에 합의하면서 이 땅은 138년 만에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정부는 11일 미국과 제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어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주목되는 것은 용산기지 2개 구역의 반환이다.
용산기지 남측지역 사우스포스트에 있는 스포츠필드 부지(4만 5,000㎡)와 국립중앙박물관과 인접한 소프트볼경기장 부지(8,000㎡)가 이날 반환 결정됐다.
토지 오염 문제가 있지만 심각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알려진 만큼 펜스 설치 등 보안상 필요한 조치가 끝나면 내년 3~4월에는 일반 국민들에게 개방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에 반환된 부지는 5만 3,000㎡로 용산기지 반환 대상 면적(203만㎡)의 2.6% 수준이지만 기지 반환의 소중한 첫발을 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미군이 쓰던 용산기지의 일부가 반환된 전례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용산가족공원 등도 원래는 용산기지에 속해 있었다.
현재 일반 국민에 개방되고 있는 장교숙소는 SOFA 절차와 무관하게 1986년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은 땅이다.
장교숙소의 토지는 국방부가, 건물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소유한 채 미군에 임대했으나 평택 기지 이전과 함께 미군이 쓸 필요가 없어지자 건물을 개보수해 일반 국민에 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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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용산기지 전체 이전과 반환이 본격 추진된 이후 땅을 돌려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가 순차적으로 구역을 반환받는 방안을 택한 것은 용산기지는 전체 기지 폐쇄 이후 반환을 추진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현재 이들 부지는 대부분 잔디밭 상태로 특별한 시설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산기지를 공원으로 조성하려고 해도 언제 기지가 반환될지 알 수 없어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나마 먼저 기지를 우선 반환받게 됨에 따라 정부의 공원 조성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용산공원 조성 면적은 총 291만㎡에 달한다. 당초 정부는 2027년까지는 용산공원을 완공한다는 목표를 설정한 바 있으나 시점은 2030년 이후로 다소 밀린 상황이다.
지난 7월 용산공원 조성계획 국제공모 당선자인 ‘WEST8’과 ‘이로재’가 ‘Healing: The Future Park’ 안을 공개했고, 국토부는 공원 조성과 관련한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국민 참여단 300명을 모집 중이다.
참여단은 용산공원의 정체성을 정립하고 용산공원 이용 프로그램에 대한 아이디어와 용산공원 일대 역사문화 유산의 활용방안 등을 모색하게 된다.
이를 통해 국토부는 공원 조성 계획을 내년 말에는 확정할 방침이다. 국토부와 서울시는 용산공원 이름 공모전을 진행 중이며, 이에 9,000건 이상 접수됐다.
이와 함께 이번 미군기지 반환에는 캠프킴(4만 8,000㎡) 부지도 포함됐다.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에 있는 캠프킴 부지는 정부가 택지로 개발해 공공임대 등 3,100가구를 공급할 예정이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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