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연초 발표한 경제 전망 보고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경제 충격 여파로 생길 중요한 문제가 부채 위기라고 했다. 지난 1980년대 중남미 국가의 국가 부채 상승과 초(超)인플레이션, 1990년대 한국·태국의 외환 위기, 2009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세 차례 위기를 경험했는데 훨씬 더 위험한 ‘4차 부채 파동(4th debt wave)’이 우려된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최근 한국 곳곳에서 이 위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금융 안정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가계 부채는 1,682조 원으로 국민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어서는 전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가 됐다. 기업 부채도 한 해 동안 15%의 빠른 속도로 늘었으며 가계와 기업을 합친 민간 신용이 GDP의 211%다. 국가 부채는 지난해 847조 원, 올해는 956조 원으로 늘고, GDP 대비 비율이 30%대 후반에서 2020년 43.9%, 2021년 47.3%로 급격히 증가한다.
한국은 1997년에도 빚으로 말미암아 국가 위기를 겪었다. 기업이 과다하게 돈을 빌리고 이를 체크해야 할 은행은 단기로 외화를 빌려 장기로 꿔주면서까지 부채질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다. 다행히 국민의 금 모으기 운동과 각계의 고통 분담을 통한 경제 구조 조정으로 조기 극복했는데, 그 밑바탕이 된 것은 기업과는 달리 정부가 건전한 재정 상태를 지키고 있었던 점이다. 그 덕에 당시로써 매우 큰 돈인 150조 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해 기업과 금융기관 정상화를 할 수 있었다.
현재는 가계·기업·정부 모두 빚이 쌓였고 그 내용도 문제다. 집값이 뛰는 바람에 영혼까지 끌어다 집을 사느라 가계 대출이 늘어났고 전셋값도 덩달아 상승해 전세 대출도 증가했다. 이를 막느라 정부가 주택 관련 대출을 규제하자 신용 대출이 늘고 빚내 만든 돈은 증시로도 쏠렸다. 지난해 3·4분기 가계 자금 조달이 그 전 해보다 30조 원 늘었는데 소비는 오히려 줄었다.
777조 원이나 되는 자영업자 빚도 큰일이다. 코로나19 피해 지원을 위해 신규 자금 융자와 기존 대출 상환 유예를 해준 결과다. 더 큰 문제는 그중 20%는 원래부터 적자라는 점이다. 이러한 자영업자는 감염병 사태가 끝나도 정상적인 영업을 해서 돈을 갚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 대출도 잠재 부실 위험이 크다. 원금 상환과 이자 지불을 6개월씩 두 번 연장했지만 유예 기간이 오는 3월 말 종료된다. 종료되면 해당 기업은 어려움이 크지만 계속하면 부실덩이를 키우는 셈이다.
정부 부채가 늘어가는데 정치권은 선심성 정책을 만드느라 골몰한다. 국가 부채 1,000조 원과 부실 위험의 척도인 GDP 대비 50% 돌파도 시간문제다. 대한민국이 빚 가운데로 빠져드는데 많은 사람이 위기의식은커녕 개의치조차 않는다. 방금 3차 재난지원금을 주기 시작했는데 4차를 전 국민 대상으로 주자는 여론조사에 68%가 찬성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우리나라 민간 부문 빚 위험도가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높은 ‘경보’ 수치로 발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금융 당국은 가계 대출 총량 관리에 나섰다. 주식시장 현상을 고려해 위기 때 취했던 공매도 금지 조치를 원상으로 회복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기획재정부 장관도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라며 재난지원금에 유보적인 견해를 보였다.
늦은 감이 있는 관료들의 빚 억제 정책이 선거의 해에 그나마 지켜지려면 국민들이 위기 경고를 새겨들어야 한다. 빚을 무서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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