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이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국가정보원이 18대 국회의원 등에 대해 광범위한 불법 사찰을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찰 정보 공개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추진한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민주당이 선거를 앞두고 과거 정부의 의혹 부풀리기를 통해 지지층 결집 시도에 나섰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구속과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국면 전환을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야당은 “선거를 앞두고 국정원까지 선거에 동원한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10일 “여당이 4월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국정원을 동원해 12년 전 사건을 들추고 있다”며 비판했다. 당 일각에서는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예비 후보에 대한 여권의 공격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 후보는 이명박 정부 시절 정무수석을 지낸 바 있다. 결국 과거 정부의 일탈을 부각시켜 보궐선거 구도를 바꾸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다. 상황이 이렇자 여당이 보궐선거를 위해 과거 정부의 국정원 사건을 역으로 흘리는 ‘국정원 신종 정치 개입’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 사찰에 대한 정보 공개 촉구는 필요하고 강력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국정원은 관련 사실에 대한 정보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국회 정보위원회 여당 의원들은 전날 ‘사찰성 정보 공개 촉구 및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결의안’ 채택을 추진하기로 하고 결의안을 작성했다. 현재 국회 정보위 전체 12명 의원 가운데 8명이 민주당 소속으로 결의안 채택에 장애물도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은 오는 16일 국회 정보위 전체 회의에서 국정원에 실제 사찰 문건의 존재 여부를 파악해 보고하라고 요구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지난 1월부터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의 사찰 의혹을 제기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당 회의에서 “이명박 정부 국정원이 김승환 전북교육감을 사찰한 문건이 나왔다”며 “이 문건에는 ‘2009년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여야 의원 전체에 대한 신상 자료 관리를 요청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아울러 이명박 정부 시기의 국정원 일탈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 속에 대응 방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의 한 의원은 “민주당이 보궐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과거 정부에 대한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에 나선 것”이라며 “당 내부적으로 민주당이 시도하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민주당의 의혹 제기에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은 “하필 ‘지금’이라는 시점이 중요하다”며 “국정원의 정치 개입, 정치 공작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여당의 의도까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지지층 결집 등 결과적으로 선거에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소재는 분명하다”며 “다만 선거용으로 비춰질 경우 여당에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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