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경제 단체가 쇄신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반기업 정서를 앞세운 정치 외풍(外風)에 기업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고 초격차 전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 단체들의 협력과 위상 제고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한상공회의소가 현 정부 들어 상대적으로 많은 힘을 받고 있지만 정책 연구 기능이 현격히 떨어지고,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적폐로 낙인 찍혀 한껏 움츠러들었으며,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아직까지 종합 경제 단체로서 역할을 하기에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대한상의와 한국무역협회 차기 회장에는 각각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구자열 LS그룹 회장이 추대됐다. 정보기술(IT) 거물들을 영입하는가 하면 민간 기업인이 무협을 이끌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전경련은 연구 능력을 바탕으로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역할을 주로 맡고 회원사가 가장 많은 대한상의는 전체 경제계를 대변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기업인 회장을 맞이하는 무협은 실제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차기 회장
4대 그룹 총수로는 처음…영향력 더 커질 듯
대기업-중견·중소기업간 이견 조율은 숙제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최태원(사진) SK그룹 회장이 추대되면서 경제계의 기대가 크다. 4대 그룹 총수가 대한상의 회장을 맡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4대 그룹 오너 경영인이 경제 단체 수장을 맡는 것도 지난 1998년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에 오른 후 23년 만이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현 정부 들어 경제계를 대표하는 경제 단체로 발돋움한 대한상의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SK가 국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대한상의의 향후 행보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맏형’ 역할을 해왔다는 점도 주목된다. 최 회장의 탄탄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삼성·현대차·LG 등 주요 대기업의 대한상의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국 최대 상의인 서울상의 회장단에 정보기술(IT) 기업의 젊은 경영인들이 대거 합류한 점도 경제 단체의 변화와 쇄신을 앞당길 요인으로 꼽힌다.
서울상의에 새롭게 합류하는 부회장은 김범수 카카오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 등이다. 그간 전통적인 제조 업체 위주로 구성됐던 서울상의 회장단에 IT·게임·스타트업·금융 업계의 대표들이 참여하며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아우르는 대한상의의 특성상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간 이견을 조율해야 하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대한상의가 지난해 정부의 기업 규제 3법 추진과 관련해 다른 경제 단체들과 공동 대응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 같은 회원사 구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지적된다.
■손경식 경총 회장
종합경제단체로서 '反기업 정서' 해소 집중
정책 연구 능력 키우고 외부 소통 확대 필요
손경식(사진) 회장이 이끄는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올해 반기업 정서 완화에 역량을 집중할 예정이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경총은 지난 17일 개최된 회장단 회의에서 올해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경총 관계자는 “회장단 회의에서 우리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너무 팽배하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며 “손 회장도 반기업 정서를 없애는 사업을 다양하게 추진하겠다고 회장단에 설명했다”고 전했다.
경총은 또 올해 종합 경제 단체로서의 전환에 한층 속도를 낼 계획이다. 경총은 지난해 7월 창립 50주년에서 민간 종합 경제 단체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관료 출신으로 대한상의 부회장을 역임한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 원장을 신임 상근부회장으로 내정한 것도 경총이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 단체로 변모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과거 민간 단체로 재계의 입장을 주로 대변했던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위축되자 경총이 그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정부가 상법·공정거래법 등 기업 규제 3법을 추진할 당시 경총이 앞장서 반대목소리를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다만 경총이 넘어야 할 산은 적지 않다. 문재인 정부 들어 상근부회장 3명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낙마한 것은 경총의 난맥상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합 경제 단체를 표방하기에는 정책 연구 능력이나 외부 소통 능력이 크게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재계 대표성을 놓고 전경련을 흡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전경련과의 갈등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상의는 법정 단체라 아무래도 정부의 반기업 정책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는 데 한계가 있고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들어 활동이 위축된 상태여서 경총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고 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
흡수통합론에 후임 부재…5연임 가능성 높아
부회장단 개별 회원사 참여 등 조직변화 절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차기 회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2011년 33대 회장으로 추대된 이래 37대 회장까지 4연임을 이어온 허창수(사진) 회장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정기총회가 이달 26일 예정돼 있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위상이 추락한 전경련 수장을 맡는 것에 손사래를 치는 인사들이 많아 허 회장이 5연임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차기 회장 후보로 재계 순위나 연령 등을 고려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도가 언급되고 있지만 오는 3월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그룹 경영에 복귀하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수장이 없어 곤란한 전경련의 상황은 2016년 국정 농단 사건 탓이 크다. 당시 사건의 여파로 전경련의 주축이었던 4대 그룹이 모두 탈퇴를 선언했으며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상징성을 잃었다.
이런 가운데 손경식 경영자총협회 회장의 ‘흡수 통합안’까지 대두됐다. 최근 손 회장은 경총이 전경련을 흡수하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전경련의 한 임원은 “통합을 상상한 적도, 서로 논의한 적도 없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경제 단체마다 각자 정해진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지 통합 여부가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대변하는 전경련과 노사 관계에 집중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하는 경총 본연의 임무가 서로 다르다는 지적이다. 한편 재계에서는 전경련이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거버넌스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지금까지 무조건 그룹 총수만 맡아왔던 부회장단의 구성을 바꿔 개별 회사의 사장도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야 업계의 목소리가 더 뚜렷하게 반영될 것”이라며 “개별 회원사가 참여한 업종별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독일의 사례를 고려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구자열 무역협회 차기 회장
15년만에 기업인 회장…무역업계 새활력 주목
수출기업 애로 정부에 전달 '민관 가교役' 기대
15년 만에 민간 기업인 회장을 맞이한 한국무역협회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침체를 겪고 있는 무역 업계에 새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무역협회는 19일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회장단 회의를 열고 구자열 LS그룹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확정했다고 밝혔다. 구 회장은 오는 24일 무역협회 정기총회에서 의결을 거친 후 제31대 회장으로 공식 선임될 예정이다.
김재철(1999~2006년) 동원그룹 회장에 이어 민간 기업인이 무역협회장을 맡은 건 15년 만이다. 그동안은 장관급 경제 관료 출신들이 무역협회장을 맡아왔다. 이날 회의에서 김영주 현 무역협회 회장은 “코로나19로 불확실한 무역 환경에 기민한 대응이 필요한 업계를 위해서는 경륜과 역량이 있는 기업인 출신을 추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차기 회장으로 구 회장을 추천하는 이유를 밝혔다.
재계에서도 구 회장이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침체된 무역 업계의 상황을 대변할 구심점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글로벌 무역 업계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실질적인 니즈를 파악할 수 있는 기업인 출신이 회장을 맡는 흐름이 적절하다”며 “구 회장은 풍부한 실무 경험을 토대로 국내 수출 기업을 대표해 적극적으로 발 벗고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구 회장이 현장 경영을 중시하고 추진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무역협회는 앞으로 수출 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기관으로서 역할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국회에서 기업 규제 3법,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등 기업의 경영 활동에 제약을 가하는 법안이 쏟아지는 가운데 구 회장이 국내 수출 기업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할 것이라는 기대도 모아진다. 이날 무역협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다양한 공공 분야 활동과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무역업계의 애로를 정부 정책에 반영하는 민관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재용 기자 jylee@sedaily.com,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전희윤 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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