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명의 마녀가 있다. 변화무쌍한 목소리로 듣는 이를 단숨에 사로잡는 마성의 보컬, 옥주현·손승연이 그 주인공이다. 황홀한 목소리를 주문 삼아 관객을 홀리는 초록 마녀들. 뮤지컬 ‘위키드’의 엘파바 역을 맡아 열연 중인 둘은 미친 가창력과 연기로 무대와 객석을 그야말로 집어삼켰다. 티켓 오픈 때마다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위키드 품귀 현상’까지 나타날 정도다. ‘고난에 맞서 높이 날아오르자’는 메시지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초록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두 사람을 지난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만났다.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동명 소설을 무대화한 작품으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초록 마녀가 실은 거대한 권력에 맞서 세계를 구한 선한 마법사였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2003년 미국 브로드웨이 초연 이래 16개국 100여 개 도시에서 6,000만 명에 가까운 관객과 만났다. 한국에서는 2012년 초연 이후 이번이 네 번째 시즌이다.
옥주현은 경력 다부진 베테랑 마녀다. 지난 2012년 위키드 초연 공연에서 엘파바를 연기한 그는 7년 만에 같은 배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합류임에도 ‘엘파바’ 하면 여전히 옥파바(옥주현+엘파바)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을 만큼 초연에서 그가 선보인 무대는 강렬했다. 옥주현은 “개인적으로도 이 작품으로 무대에 다시 오르기를 학수고대했다”며 “(코로나 19로) 전 세계 위키드가 멈춰선 뒤 제일 처음 올라가는 게 한국 위키드라는 점에서 큰 자부심과 함께 책임감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손승연은 괴력의 신입 마녀다. 엠넷 ‘보이스 오브 코리아’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난 2019년 ‘보디가드’에 이어 위키드로 두 번째 뮤지컬에 도전하게 됐다. 명불허전 가창력에 관객들은 ‘지붕을 뚫는 손파바’라는 별명을 붙였다. 손승연은 “공연장 지붕이 아직 안 뚫린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떤 뒤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정규 앨범 발매와 뮤지컬 오디션 일정이 겹쳐 부담이 적지 않았지만, “위키드였기에 꼭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손승연은 엘파바에게서 예전의 자신을 본다. “엘파바는 초록색 피부로 인해 아이들에게 놀림 받고 무시를 당하는데, 저는 제 꿈을 준비하면서 외모 탓에 많은 벽에 부닥쳤어요. 포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떻게든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던 것 같아요.” 엘파바의 아픔을 이해하기에 좀 더 가까이 배역에 다가설 수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듣던 옥주현은 후배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과 오해를 샀던 걸그룹 시절, ‘아이돌 출신’이란 선입견을 딛고 뮤지컬 디바로 자리매김하기까지의 긴 시간 속에서 그 역시 엘파바의 아픔을 수없이 경험했을 터다.
그렇다고 익숙한 경험과 감상만 투영하는 것은 아니다. 옥주현은 이번 공연에서 ‘새로운 위키드’와 마주하고 있다. 초연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작품 속 메시지와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경험이 더 쌓이고 나이도 먹다 보니 내가 이 작품에서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또 다를 수 있다는 설렘이 있다”며 “초연 때 배역 표현에 집중했다면 이번 무대는 다른 역할과 그 의미를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극 중 말하는 염소 캐릭터인 딜라몬드 교수에 대한 감상이 대표적이다. “딜라몬드 교수는 옳음과 진실, 선(善)을 알려주는 존재예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그런 존재들이 드물게 있잖아요. 그들이 (극에서처럼) 말을 잃어간다는 것은 세상에서 진실과 선을 말해주는 이들이 사라진다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죠.” 이 발견 만으로도 위키드와의 조우는 감동적이고 가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무대 위 파워’ 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위키드 앞에서는 “힘들다”며 혀를 내두른다. 암전 없는 장면 전환에 대사의 양도 엄청나다. 극 중 공중에 올라 고음의 노래도 소화해야 한다. 손승연은 “작품 시작 전에 (옥주현) 언니한테 ‘제일 어려운 작품이 혹시 위키드’냐고 물었는데 ‘그렇다’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베테랑이 ‘제일 어렵다고 하는 작품’을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웃어 보였다. 옥주현도 “숨을 헐떡거리다가 그걸 넘어서서 미치는 순간이 온다”며 “군대에 가본 적은 없지만, 군대 같다는 마음으로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 많다”고 거들었다.
숨차고 고된 무대지만, 그 고통마저 감사한 하루하루다. 손승연은 “이렇게 공연이 절실했던 때가 없다”며 “무대가 끝날 때마다 벅차고, 그 소중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많은 무대에 올라왔던 옥주현에게도 “이번 관객과의 만남은 어느 때보다 닭살 돋는” 경험이다. 그는 “한 회 한 회가 정말 소중하다”며 “초연 때와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돼 더욱 기쁘다”고 했다. 중력을 벗어나 저 높이 날아오를 두 마녀의 무대는 5월 1일까지 이어진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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