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날 혼자 있어서 적적했는데 이렇게 경찰관님들이 매번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너무 고마워서 계속 눈물이 나네요.”
설 연휴가 한참 지난 지난달 26일 최차순(75) 할머니는 설 선물을 들고 찾아온 경찰관들을 보자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눈시울을 적셨다. 평소 자식처럼 여겨온 경찰관들이 한 달 만에 갑작스레 나타나자 반가운 마음에 “왜 전화도 안 하고 나타나느냐”고 애정 어린 타박을 하며 한참이나 눈물을 보였다. 최 할머니를 찾은 이들은 서울 강동경찰서 112종합상황실 관리팀 소속 이병기(55) 경감·유지행(42) 경위·석근석(50) 경위다. 이들은 이날 강동구 둔촌동 일대 독거노인 17명의 집을 찾아다니며 참기름을 뒤늦은 설 선물로 건넨 뒤 한참 동안 어르신들의 말벗이 돼줬다.
이 경감을 포함한 강동경찰서 소속 경찰관 6명은 2017년 11월부터 시작해 올해로 5년째 독거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이들이 ‘나홀로 어르신 수호천사’로 불리는 이유다. 2017년 당시 둔촌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이 경감은 관할 지역 내 독거노인이 300명에 달하는데도 정작 이들을 관리하는 공무원은 1명뿐이라는 얘길 듣고 곧장 실태 파악에 나섰다. 그가 눈으로 마주한 현실은 처참했다. 치매를 앓던 한 독거노인의 집을 찾았을 때 할머니가 머물던 단칸방에는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있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할머니는 벌레인지도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이 경감은 이후 행정당국으로부터 관리가 어려운 어르신들의 목록을 받아 직접 찾기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이 경감을 도와 모두 6명의 강동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관내 독거노인 17명을 주기적으로 보살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마스크와 장갑까지 낀 채로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있지만 6명의 수호천사들은 여전히 어르신들에게 삶의 활력소다. 현관에서 경찰관들을 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은 김영남(69) 할머니는 “경찰관님들 덕분에 주민센터에서도 내가 잘 살고 있는지 걱정해주는 것 같다”며 “무한한 ‘빽’을 가진 기분이라 든든하다”고 말했다.
수호천사들 중에서도 ‘인기스타’는 유지행 경위다. 유 경위는 어르신들을 찾아뵐 때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난 듯 딸처럼 살갑게 다가간다. 어르신들이 말을 또렷하게 하시는지,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고장 난 물건은 없는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유 경위는 어르신들에게는 ‘뒤늦게 생긴 늦둥이 딸’ 같은 존재다. 이날도 한 할머니가 모은 폐지와 경찰들이 기부한 폐지를 함께 10㎞ 넘게 떨어진 고물상에 팔아 1만 3,000원을 받자 “오늘 제일 많이 받았다”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유 경위는 “수호천사 활동은 일회성 봉사가 아니라 인연을 맺는 것”이라며 “어르신들을 만나면 오히려 우리가 행복해진다”고 말했다.
경찰관들이 독거노인을 찾는 수호천사 활동은 범죄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 독거노인은 대개 치안이 좋지 않은 골목길에 사는데 이런 지역에 순찰차를 타고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것 자체가 범죄예방활동의 일환이 되기 때문이다. 또 독거노인들이 급하게 병원에 가야 하는 돌발상황에도 즉각 대처할 수 있다.
수호천사 활동이 점차 알려지면서 외부에서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물류업체 신성통상은 어르신들에게 생필품을 제공하고, 중앙보훈병원은 비닐하우스에 사는 노인 2명에게 매년 겨울 연탄을 1,000장씩 기부하고 있다. 한 사설 구급차업체는 앞으로 수호천사들이 돌보는 노인 17명은 무료로 병원에 모셔다주기로 했다.
지금은 다들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지만 활동 초기만 해도 ‘업무도 바쁜 경찰이 이런 일까지 하느냐’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수호천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이 경찰의 역할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경감은 “이제는 경찰이 사회적 약자를 적극적으로 도와야 할 때”라며 “사람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며 자식이 되어드리는 게 적극적인 약자 보호가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강조했다. 석근석 경위도 “어르신들이 선물이 아닌 우리 경찰관을 기다린다고 느꼈을 때 저절로 웃음이 났다”며 “경찰 전체로도 자발적 봉사 의식이 확산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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