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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부동산 투기의혹 수사'…경찰에게 두 달의 골든타임만 남았다

공직자 투기, 정권의 상징 키워드 '공정'과 정면 배치

LH 사태, 부동산 폭등으로 뿔난 국민의 뇌관 건드려

경찰, 특검 출범 전 성과 내놔야…"이제는 경찰의 시간"

정세균 국무총리/연합뉴스




"정부는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부동산 시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과 불공정 행위를 엄단할 특단의 방안을 마련해 강력하게 집행하겠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정부가 부동산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뭔가 데자뷰가 떠오른다. 지난 1990년 10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소위 조직폭력배를 소탕하겠다며 "우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범죄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고, 나의 모든 권한을 동원해 이를 소탕해 나갈 것"이라고 연설하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참여연대와 민변이 지난 2일 LH 직원들의 신도시 투기의혹을 폭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발단은 시민단체의 폭로에서 시작됐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일 기자회견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0여명이 지난달 신규 공공택지로 지정된 경기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를 지분 쪼개기 등으로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공직자윤리법 및 부패방지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였다.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정권 차원에는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문재인 정권이 정권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 자본으로 내건 키워드는 바로 '공정'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만큼은 자신있다"던 정권이 지난 4년간의 부동산 폭등과정에서 전혀 손을 못 쓰는 것을 보면서, 고위 공직자들은 모두 '그들만의 계획'이 있었던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분노는 임계점에 다달았다. LH 사태는 민심 이반의 도화선이었다.

이에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8일 정부 합동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을 설치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국무총리실과 국토교통부 등 관계부처와 일선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된 정부합동조사단이 진상 조사를 펴고 있지만, 수사 권한이 없어 불법행위의 진상을 밝히는 데 한계가 있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칼자루는 경찰로 넘어오게 됐다. 정 총리가 올해 초 출범한 경찰 국가수사본부에 설치된 특별수사단을 국세청, 금융위원회 등 자금 내역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관계기관을 포함한 특별수사본부로 확대 개편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기존 인력이 70여명에 불과하던 특수단은 인력이 770여명에 달하는 매머드급 수사 본부로 지난 10일 재탄생했다. 특수본부장은 남구준 국가수사본부장이, 수사단장은 최승렬 수사국장이 맡고 있다. 국세청과 금융위, 국토부 산하 부동산 조사기관인 부동산원 등에서도 인력이 파견됐지만, 실질적인 키는 당연히 경찰이 쥐고 있다.

공직자의 세종시 국가산업단지 예정지 투기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 수사관들이 19일 세종시청을 압수수색 하기 위해 빈 박스를 들고 관련 사무실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광명·시흥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남부청을 비롯해 경기북부청, 인천청 등 3개 시도 경찰청뿐 아니라 15개 시도청 에이스들이 총동원돼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신도시 개발 정보를 LH 직원에게 미리 유출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주무부처인 국토부를, 세종시 국가산업단지 투기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세종시청을 각각 압수수색했다. 행정안전부의 공무원 A씨도 관련 의혹으로 PC가 압수됐다.

복병은 정치권에 있었다. 일각에서는 검찰과 비교해 비리와 관련한 수사경험이 부족하고, 정권의 입김에 취약한 경찰이 고위공직자가 포함된 부동산 투기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며 연일 "특검을 도입하라"고 압박했다. 이후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영선 민주당 후보가 특검 도입을 주장하면서 여야는 지난 16일 특검 도입을 전격합의했다. 경찰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800여명에 달하는 수사 인력이 총동원돼 총력 수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특검을 하겠다는 것은 '솔직히 경찰 수사 믿지 못하겠어.'라는 말과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구준 경찰청 국수본부장이 여야의 특검 합의 이틀 만인 지난 18일 경찰청 기자실에 찾아와 "공직자의 투기 의혹 사건의 수사 대상이나 지역이 전국적이기 때문에 기존 특검 인력으로 보면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라며 "경찰은 (수사에) 자신있다"라고 에둘러 불편함을 나타낸 것도 이 같은 이유로 풀이된다. LH 부동산 투기 의혹을 수사하기 위해 인력과 예산을 집중하고 있는데 별도의 특검을 도입하는 것은 '옥상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라인드 앱 캡쳐


물론 경찰도 비난을 자초하긴 했다. 지난 17일 경찰은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에 "꼬우면 이직하라"라는 글을 올린 LH 직원을 찾기 위해 블라이드 앱 운영사인 '팀블라인드'를 압수수색하려다가 허탕을 치기도 했다. 등기부등본상 서울 강남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무실은 비어있었고, 경찰은 실제 사용 중이던 사무실을 뒤늦게 확인했지만 모든 직원이 퇴근한 뒤였다.

이에 대해 검찰 출신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압수수색을 하기 전 현장 답사는 수사의 기초"라며 "검찰 위주로 합수본을 구성하고 검찰 주도로 압수수색을 해두라고 하는 것은 이런 기초 실력 차이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매우 뼈아픈 지적이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1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 경제범죄수사대에서 열린 '경기남부권 부동산 투기사범 수사상황 점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특검 후보자가 정해지고 실제 수사개시를 하기까지 길게는 최소 한 달에서 최대 두 달이 소요될 전망이다. 수사 대상을 정하고 범위를 좁히는 데만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경찰은 특검이 출발하기 전 '골든타임'인 두 달 동안 소기의 성과를 올려 국민들로부터 수사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4월 7일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대선 시즌에 돌입한다. 사람들의 관심은 LH 수사에서 대선으로 급속도로 옮겨갈 것이다. 매일 쏟아지는 압수수색과 혐의자 소환 기사에 염증을 느끼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경찰은 수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이제는 경찰의 시간이다.

/박홍용 기자 prodig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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