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 콘텐츠에 남성 성희롱 논란이 잇따르는 가운데 시청자들의 높아진 성 인지 감수성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최근 웹 예능 '헤이나래'가 개그우먼 박나래의 수위 높은 발언과 행위로 논란이 되자 폐지를 결정한 데 이어 MBC TV 수목드라마 '오! 주인님'도 주인공의 노출 장면에 대한 시청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지난 23일 공개된 웹 예능 '헤이나래' 2회에서 박나래가 장난감을 체험하며 인형의 신체를 잡아당겨 성적인 묘사를 하고 수위 높은 발언을 이어가 성희롱 논란이 일었다. 이에 '헤이나래' 제작진은 프로그램 폐지를 결정했다. 박나래도 자필 사과문을 통해 "미숙한 대처 능력으로 많은 분께 실망감을 안겨드렸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박나래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6일 별다른 조치 없이 방송된 MBC TV 예능 '나 혼자 산다'에 대한 비판도 계속됐다.
지난 24일 시작한 MBC TV 드라마 '오! 주인님'은 첫 회에서 화장실에서 샤워하던 한비수(이민기 분)가 오주인(나나)을 마주하는 장면에서 이민기의 나체가 공개돼 논란이 됐다. 주요 부위는 복숭아 이모티콘으로 가려졌지만, 일부 시청자들은 배우의 나체를 장면에 담아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MBC는 다시보기 서비스, 온라인 클립 영상 등에서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이날 방영될 재방송에서도 수정본이 공개될 예정이다.
남자 배우의 노출 장면은 지난해 KBS 2TV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에서도 논란이 됐다. 우재희(이장우 분)가 이빛채온(진기주 분)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기절하면서 알몸이 드러나는 장면이 방송되자 시청자들로부터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다시보기 서비스 및 재방송에서 해당 장면은 삭제됐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시청자들의 엄격해진 잣대를 보여주는 것일 뿐 아니라 남성도 성희롱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보편화된 것이라고 분석한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미투 운동, N번방 등 각종 사건·사고가 계속 등장하면서 대중문화 분야에서도 관련된 잣대가 더 엄격해졌다"며 "과거에는 그냥 지나쳤던 장면들도 좀 더 높은 기준으로 바라보자는 시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헤이나래', '오! 주인님', '오! 삼광빌라!' 모두 남성이 성적 희롱의 대상이 됐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다는 공통점도 있다. 하재근 평론가는 "과거에는 주로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를 많이 조명해 상대적으로 남성이 겪는 피해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측면이 있다"며 "최근에는 남성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더욱 높아진 경각심으로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비판과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단계다”며 "이러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차차 새로운 기준이 정립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제작진들도 관성적으로 해오던 표현을 하나하나 돌이켜보며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시청자의 힘이 매우 커진 것도 이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꼽힌다. 인터넷의 발달로 시청자의 조직력이 강화됐으며 작품에 목소리를 내려는 의지도 강력해졌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에는 대중이 목소리를 내면 결과로 반영되는 사례도 많고 시스템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더 참여하려는 욕망이 강해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박동휘 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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