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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창업생태계 운하가 필요한 이유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유럽~인도양 항로가 15세기로 회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발 네덜란드행 화물선이 좌초하며 수에즈 운하를 막은 것이다. 일부 선박들은 9,000㎞ 넘게 돌아가야 하는 희망봉 항로로 향했다. 재개통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이 기간 세계 해운 산업의 피해 규모는 하루 약 10조 원이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 선박·항공·철도를 모두 합친 국제 교역량의 12%를 책임지며 세계 경제의 대동맥으로 불려 온 수에즈 운하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21세기 세계 산업 구조는 거대한 가치 사슬로 묶여 있다. 상품 제조와 유통·판매·서비스의 모든 과정이 국제적으로 분업화됐다. 수에즈 운하로 중동과 유럽·아시아를 오가는 수많은 원자재·중간재·완제품들이 이 거대한 글로벌 밸류 체인의 생생한 단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대규모 운하는 물류 비용 최소화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이점까지 제공해 왔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하나로 만든 파나마 운하도 마찬가지다.

기술과 시장을 직접 연결하는 연구실 창업은 시간과 비용의 단축으로 큰 사회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운하와 닮은꼴이다. 과거 연구실 창업이 활발했던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사이 많은 이들이 창업을 꿈꿨다. KIST 연구자와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필자도 한때 창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연구와 기업 경영의 역량 사이에는 극복하기 힘든 간극이 있었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으로 실패하는 경우가 늘면서 모험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고, 이는 우리 사회와 경제의 역동성마저 위축시켰다.



지난 20년간 우리 정부는 창업의 중요성을 재인식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와 궤를 같이하는 KIST의 여러 지원 제도를 운하의 형태와 비교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물길을 터주고 자체 동력으로 통과시키는 ‘수에즈형’, 또 하나는 갑문을 이용해 선박을 들어 올린 뒤 예인 기관차들이 끌어 주는 ‘파나마형’이다.

창업이 성공하려면 죽음의 계곡은 물론, 본격적인 시장 경쟁 단계인 다윈의 바다도 건너야 한다. 당연히 성공보다 실패 확률이 더 높다. 이런 실패의 두려움을 넘어서도록 하는 물길이 수에즈형 지원이다. 두려움 없이 창업에 나설 수 있도록 겸직과 휴직을 허용하고, 연구가 천직인 이들이 경력 단절 걱정 없이 창업 의지를 이어갈 수 있도록 계속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파나마형 지원은 모든 것이 부족한 창업 초기, 상용화를 위한 추가 기술 개발과 시제품 제작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또 자본이 부족한 창업 기업이 기술료로 지분을 대신할 수 있도록 했다. 위험한 해협을 건널 때 운항을 돕는 도선사처럼 연구와 경영의 차이를 보완해 줄 기업가(Entrepreneur)와의 공동 창업도 성공률을 높였다.

지난해 KIST의 연구실 창업은 7개로 예년보다 대폭 늘었다. 여러 가지 창업 지원책들이 효과를 낸 듯하다. 국내 일반 창업의 5년 생존율은 30%. 하지만 기술 창업은 두 배인 60%가 넘는다. 평균 매출액 역시 일반 창업의 8배, 일자리 창출도 7배 이상이다. 실로 오랜만에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는 혁신 기술 창업의 기운을 보다 혁명적인 변화로 이끌 수 있는 창업 생태계 운하 건설이 절실한 때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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