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조량, 바람 세기에 구애되는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자력발전을 활용하면 값싸고 안정적인 수소 생산이 가능합니다.”
제프리 로스웰 터너 해리스 수석경제연구원은 “수소 대량 생산에 원자력 에너지가 필수”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친환경 수소경제’를 위해 화석연료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그레이·브라운수소 대신 물을 전기분해(수전해)해 얻는 그린수소 생산을 확대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지고 있다. 결국 수전해에 쓰이는 전기를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로스웰 수석은 “천연가스·석탄 등 화석연료발전은 운반과 보관이 비교적 용이하고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다량의 탄소가 배출된다는 것이 분명한 한계”라며 “또 풍력·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는 탄소 배출은 적지만 일부 시간에만 간헐적으로 발전이 가능하므로 수소 생산도 들쭉날쭉하고 그만큼 경제성도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반면 원자력 에너지는 발전에 시간 제약이 없고, 무엇보다 단일 발전원 가운데 탄소 배출량이 가장 적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미국 시장조사 기관 번스타인 리서치에 따르면 1kwh당 원전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은 9g으로 석탄(1,000g)과 천연가스(450g)는 물론 풍력(11g)·태양광(44g)보다도 낮다. 로스웰 수석은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믹스’ 하는 것이 청정수소를 확보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주요 국가들도 청정수소 생산을 위한 원전 기술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특히 세계 2위 원전 강국인 프랑스가 치고 나가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9월 원자력 에너지를 포함한 70억 유로(약 9조6,000억 원)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 정책을 발표했다. 프랑스 국영 전력 회사인 EDF는 지난 2019년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수소를 생산하기 위한 자회사 ‘하이나믹스’를 설립한 바 있으며, 수전해 수소 생산 실증 사업 역시 진행하고 있다. EDF는 또 최근 러시아 국영 원전 기업인 로사톰과 원자력 기술을 활용한 수소 생산 및 기술 개발을 위한 협약을 맺기도 했다.
미국 에너지부(DOE)도 아이다호국립연구소 주도하에 엑셀에너지 등 3개 원전 운영사와 함께 현재 운영 중인 원전을 활용한 수소 생산 실증 사업을 벌이고 있다.
로스웰 수석은 “주요 국가들은 수소 생산을 위해 섭씨 900도 이상 고열을 내는 첨단 원자력 기술에 나선 상태”라며 “기존 원전을 활용하거나 소형 모듈 원자로(SMR) 같은 신형 원전을 개발하는 등 원전을 유연하게 활용하고 최적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로스웰 수석은 한국의 우수한 원전 기술이라면 안전성을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원전을 수소 생산에 활용할 때 가장 큰 염려는 대규모 사고 가능성이겠지만, 한국에서 사용하는 가압수형 원자로, 또 캐나다의 가압관식 중수형 원자로(CANDU)는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형 노형인 APR1400은 내진 성능이 기존 모델(OPR1000) 대비 6배 향상됐고, 디지털 계측 제어 설비 같은 최신 기술 역시 적용됐다. 이런 이유로 APR1400은 지난 2019년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에서 최초로 설계 인증을 취득했다. 미국 이외의 국가 가운데 NRC 설계 인증을 따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로스웰 수석은 “APR1400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원자력 기술”이라고 했다.
로스웰 수석은 한국이 처한 ‘에너지 국제 역학 관계’를 고려해도 원전 활용 필요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재생에너지 기술과 관련해 산업 강국인 중국과 일본의 추격과 견제가 매우 심할 것”이라며 “반면 한국 원자력 기술은 일본보다 앞서고 가격 측면에서도 저렴하고, 중국 원자력 기술보다 국제적으로 더 인정 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수한 원전 경쟁력을 제대로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한국의 수소 ‘특화 전략’이 될 수 있다는 조언이다.
로스웰 수석은 “재생에너지에 치우친 수소 전략은 ‘에너지 빈국’인 한국에 적합하지 않다”며 정부 에너지 전환 정책에 대한 지적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 이상인 한국이 화력발전소와 원전을 장기적으로 동시에 폐지하는 정책을 펴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며 “지금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저탄소 발전원을 최적으로 활용할 때”라고 강조했다. 비단 수소 생산뿐 아니라 에너지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에너지 전환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수소 전략 로드맵’에 대한 조언 역시 이어갔다. 로스웰 수석은 “한국 수소 로드맵은 기존 기술에서 신기술까지 전부 아우르겠다는 야심을 보이는 측면이 있다”며 “너무 많은 기술이 중구난방으로 개발돼도 문제”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을 잘하겠다’면서도 정작 수소 활성화 방식이 연료전지 활용에 치우친 맹점도 있다고 그는 꼬집었다. 실제로 정부가 지난 2019년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발표한 수소 로드맵은 수소차·충전소 확충, 수소 연료전지 확산이 두 개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로스웰 수석은 “예를 들어 (한국 수소 로드맵은)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수소를 생산하는 ‘블루수소’ 분야 비중이 높지 않고 관련 기술 개발도 부진한데, 제조업이 한국의 강점인 만큼 블루수소가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도 이산화탄소 포집·저장(CCUS) 방식으로 생산한 블루수소를 ‘청정수소’로 포함킬지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액화천연가스(LNG)에서 직접 추출하는 ‘추출수소’는 청정수소에 포함시키기 힘들지만 석유화학 공정, 철강 등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나오는 ‘부생수소’는 해석에 따라 청정수소에 포함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로스웰 수석은 “한국이 능한 분야에 집중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조양준 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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