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는 나무가 한 해 한 해 자라며 줄기에 하나둘 쌓아 놓은 삶의 기록과도 같다. 나이테에 담긴 정보를 해석하고 연대를 측정하는 ‘연륜연대학’이라는 독립적 학문 분야가 자리 잡았을 정도다. 하지만 나이테가 함축하고 있는 정보는 그보다도 훨씬 폭넓고도 깊다.
신간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벨기에 출신 연륜연대학자인 발레리 트루에 미 애리조나대 나이테연구소 교수가 지난 20년 간의 연구를 토대로 풀어내는 나무와 나이테 이야기다. 연륜연대학은 1716년산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 ‘메시아’의 진품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계기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인 가치가 무려 2,000만 달러(약 224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 바이올린이 1999년 이래 위작 의혹에 휘말렸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원된 것이 연륜연대학이었다. 결국 ‘메시아’와 또 다른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인 1724년산 ‘엑스-빌헬미’의 나이테 패턴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2016년에야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됐다.
고급 바이올린의 진품 여부가 연륜연대학의 존재감을 알렸다면, 이 책은 기후변화에 대응할 실마리를 찾는데 이 학문의 가치가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나이테를 이용해 캘리포니아 산불의 역사를 되짚고, 가뭄·허리케인 등 이상기후 움직임을 추적한 과정을 소개한다. 실제로 연륜연대학자들은 나이테의 나무 밀도를 토대로 한 데이터와 빙하 코어 데이터 등을 조합해 북반구 전체의 1,000년 간 연평균 기온 변화를 재구성, 20세기에 급격한 온난화가 진행됐음을 밝힌 바 있다.
나이테에 담긴 기후 변화와 사회 현상의 상관관계도 전한다. 저자는 미국 플로리다키스 나무들의 나이테를 통해 허리케인 발생 빈도를 조사한 결과를 토대로 나이테가 좁은 해에는 허리케인이 자주 생겨 더 많은 배가 침몰했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나이테가 넓은 해에는 날씨가 온화해 무역 활동이 활발했고, 자연스레 무역선을 노리는 해적도 기승을 부렸다고 말한다.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한 실마리도 나이테에 있다. 로마 시대에는 오래된 숲을 벌목해 목재 건축에 쓰는 바람에 농업 생산력이 줄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몽고는 1211~1225년 당시 기후 조건이 좋아 칭기즈칸의 활발한 정복 활동에 긍정적 영향을 받았다.
저자는 “나이테는 우리에게 기후변화가 어떻게 과거 사회에 영향을 끼쳤는지 가르쳐줬다”며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 과거 사회가 어떻게 대처했나 이해하는데도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이러한 잠재력을 토대로 여러 학문 뿐 아니라 정책 입안자들과 적극 협력해 기후변화에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1만8,0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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