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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무엇이 '질병의 신' 아폴론을 깨웠나

■신의 화살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윌북 펴냄

아테네에 '죽음의 화살' 쏘듯

최악의 코로나 지구촌 뒤덮어

팬데믹 끝나도 또 전염병 기다려

인류 vs 바이러스 긴 싸움 불가피

연대·이타적 행동으로 극복해야

2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예방접종센터에서 시민들이 백신 접종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 세계에서 올 여름까지 코로나19가 앗아간 생명은 400만 명이 넘는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21세기 최악의 전염병 확산 사례다. 초연결사회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간의 자신감은 전염병의 대유행(팬데믹) 앞에 무력해졌고, 강도 높은 신체적·사회적 거리두기 조치 속에 개인들은 단절과 고립으로 내몰렸다.

미국의 저명한 내과 의사이자 사회학자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는 신간 ‘신의 화살’에서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죽음의 화살’에 비유한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에 나오는 바로 그 그 ‘죽음의 화살’이 3,000년 만에 돌아왔다고 이야기한다. 일리아드에서 치유의 신이자 질병의 신인 아폴론의 분노를 산 아테네에는 죽음의 화살이 쏟아져 내려, 역병이 퍼지고 도탄에 빠진다. 저자는 특히 인도에서 ‘델타 변이’ 확산으로 화장장의 장작이 동날 정도로 사망자가 급증한 끔찍한 풍경에서 아폴론의 참화를 떠올리며 충격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책의 제목도 여기에서 따 왔다.

이 미증유의 사태가 지나가도 인류를 노리는 바이러스의 엄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 3,900만 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른바 ‘스페인 독감’이 발생한 것은 불과 100년 전인1918년의 일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이 잇따라 지구촌을 강타했다. 페스트, 에볼라, 천연두 등 역사적으로 전염병이 돌았을 당시의 풍경은 21세기라고 달라지지 않았다. 저자는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는 지난 수백 년 간 각종 호흡기 질환의 대유행마다 일반적으로 나타난 변화 과정을 그대로 밟아 왔다”고 말한다. 과학과 의료 분야는 발전했지만 전염병을 둘러싼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허탈함을 넘어 충격을 안겨 준다.

서울아산병원이 서울시립대 기숙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생활치료센터에 앰뷸런스가 들어와 있다. /사진 제공=서울아산병원


저자는 의학자, 사회학자, 생물학자, 공중보건학자라는 다양한 이력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과거 역병이 돌 당시의 풍경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 지를 진단한다. 미국 정부가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할 당시를 살펴 보자.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현실에서 전염병 확산을 막으려면 거리두기가 현실적 대책이다. 하지만 작년 3월 뉴욕에 휴교령을 내려졌을 당시 저소득층 가정의 아동은 갈 곳이 없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그 시기가 늦어졌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창궐할 당시 휴교령이 결정된 과정과 똑같았다고 책은 언급한다.

팬데믹이 초래하는 공황 상태는 정서적 비탄과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이 전염병 확산을 탓할 희생양을 찾는데 골몰한다. 중세 시대에는 페스트가 퍼진 후 소수 집단을 표적 삼아 마녀사냥이 기승을 부렸다. 21세기에 코로나19가 퍼지자 일손을 도우려는 의료진이 먼 곳에서 달려왔지만 감염 환자를 다룬다는 이유로 거처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 확진판정을 받고 치료 받은 이들은 이웃과 가족으로부터 회피의 대상이 된다. 흑인, 인디언, 히스패닉 등 소수 민족·인종은 초기 코로나19 감염률이 높았다는 이유로 극심한 차별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감염병을 이유로 거주 환경, 직업을 구분 지으며 끊임없이 차별을 낳고 불평등을 키웠다.



코로나19의 확산 와중에 벌어지는 백신 접종, ‘사회적 거리두기’ 등 각종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은 역사적으로 벌어진 각종 전염병 사태에서 보이던 모습과 비슷하다. 프랑스 남서부 툴루즈 시민들이 21일(현지시간) 코로나19 백신 접종 혹은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증명서를 제시해야 문화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정부의 조치를 규탄하는 시위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라는 글귀를 들고 행진을 벌이고 있다. /툴루즈=AFP연합뉴스


그럼에도 저자는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팬데믹에서 회복하는 과정도 인류가 수천 년 간 역병을 극복했던 수순을 그대로 따라 가리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연대와 집단적인 방역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바이러스와 전염병은 인간의 근본 습성인 군집 활동, 신체 접촉을 통한 교감 등을 파고들었지만 이타적 행동, 협력, 교육이라는 인간의 근본 능력을 해치지는 못했다. 바이러스의 특징, 방역 요령, 치료 정보 등이 인터넷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고, 몇 달 만에 여러 곳에서 백신이 개발됐다. 저자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이어질 인류와 신종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고 해야 할 일은 좋은 생각과 이타적인 행동으로 바이러스에 맞서는 것이라고 말한다.

크리스타키스는 책 말미에서 전염병의 대유행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인접국 간 비용 분담, 국제 협력 등 대단히 복잡한 국제 정치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야 하는데, 팬데믹에 대한 대응 역시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는 “코로나19의 대유행이 향후 거대한 지구적 문제에 대비할 예행 연습의 기회를 제시했다”며 지도자들 뿐만 아니라 각 개인들이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1만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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