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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언어정담] 팬데믹 시대, 지속 가능한 홈스쿨링을 꿈꾸며

작가

인생 고전으로 손색없는 '작은 아씨들'

개성 강한 네 자매 존중해주는 부모

입시 내모는 우리 교육현실과 대비

아이 내면 살피는 시간으로 활용을

정여울 작가




홈스쿨링을 재미있고 신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아예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아니더라도, 홈스쿨링이 필요한 순간들이 많다. 팬데믹의 장기화로 인해 아이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온라인 수업만으로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배움을 모두 충족시켜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별한 프로그램이 없어도, 머나먼 장소가 아닌 바로 우리집이 편안하고 신명나고 자유로운 배움의 놀이터가 되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작은 아씨들>을 다시 읽게 되었다. 읽고 또 읽은 인생고전이지만 ‘홈스쿨링’이라는 화두로 다시 읽으니 이 작품이 그야말로 최고의 교육학 백과사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첫째, 이 아름다운 홈스쿨링 배움터에는 선생과 학생 사이의 위계관계가 없다. 그 대신 조건 없는 사랑, 서로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사랑이 있다. 네 자매 메그·조·베스·에이미는 한 부모에게서 태어났지만 확연하게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다. 메그는 얌전하고 책임감 강한 모범생 큰딸이지만 맏이로서의 부담감 때문에 힘들고, 조는 천방지축 말괄량이처럼 보이지만 속 깊고 따스하며 열정적인 소녀다. 베스는 병약하고 내성적이지만 피아노를 향한 열정, 독서를 향한 열정만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인, 자세히 볼수록 더욱 매력적인 아이다. 에이미는 허영심과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더 많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한다. 네 아이의 모든 개성을 하나같이 존중해주는 마치부인의 깊고 따사로운 사랑이야말로 이 ‘조 마치네 홈스쿨링’의 핵심 에너지다. 단 한 번도 큰소리를 내지 않고, 절대 화내거나 다그치지 않고, 부인은 아이들을 지혜와 사랑으로 보살펴준다. 조가 인생을 걸고 쓴 원고를 불쏘시개로 만들어버린 에이미의 만행에 조가 터뜨리는 분노와 용서의 파노라마는 ‘자매 싸움에 고래등 터진’ 경험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핵사이다’급 감동을 준다. 사랑하지만 미친 듯이 싸우고, 미친 듯 싸우다가도 다시 화해하는 것. 그것이 가족이라는, 절대 배신하지 않는 사랑의 학교에서 일어나는 홈스쿨링의 묘미다.





둘째, 이 아이들에게는 배움이 노동이 아니라 놀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교육의 목표다. 공부도 어려운데, 어떻게 공부를 놀이하듯 즐겁게 하겠는가. 의외로 쉬운 곳에 해답이 있다. 시험을 없애는 것이다. 홈스쿨링에서는 시험을 없애고, 아이들을 더 많이 놀게 하자. 놀 줄 아는 아이들이 사랑할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들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바꾸니까.

셋째, 이토록 평범해 보이는 조 마치네 집에서는 아무도 입시를 강요하지 않는다. 마치 부인이 지향하는 것은 오직 ‘지혜롭고 다정한 아이들’을 기르는 것뿐이다. 문학과 역사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알려주고, 그 대신 그것으로 무엇을 해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마치부인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남편에게 갈 차표를 살 돈이 없을 정도로 가난하지만, 그녀를 위해 자신의 탐스러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씩 웃으며 여행비를 건네는 딸 조가 있다. 그런 뜨겁고 눈부신 사랑은 이 세상 어디서도 사고팔 수 없다. 우리네 홈스쿨링이 어려운 이유는 입시라는 커다란 난관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자본주의 사회의 승리자로 만들기 위한 강한 집착이 있는 한, 홈스쿨링은 또 하나의 지옥같은 입시학교로 전락한다.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한 무한경쟁의 싸움터가 아니라 ‘내 아이를 진정으로 알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생각해야 홈스쿨링이 달라진다. 내 아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 그것 외에 다른 목표를 잡지 말자. 우선 아이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부모가 아이에 대해 배우고, 연구하고, 보살피는 것. 그것이 홈스쿨링의 가장 소중한 목표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마치부인의 사랑이 너무 완벽해서 따라하기 어렵다고 투덜거리진 말자. 사랑이면 된다. 그저 해맑고 끈덕진, 결코 끝나지 않는 사랑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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