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금융시장이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치솟는 대출 금리로 가계·기업들의 이자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과잉 유동성에 따른 자산 거품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게다가 정권의 방만한 돈 풀기는 경제 불안정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는 이념에 얽매인 규제와 과세 정책을 남발해 시장을 왜곡시키고 있다”며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표를 의식한 퍼주기 공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치만능주의가 집값, 일자리, 소득 분배 등 경제 분야에서 총체적 실패를 초래했다”며 “끝없이 오르는 집값과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 문제가 내년 대선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0%에서 0.75%로 인상한 뒤 가계 부채에 대한 우려가 높다.
△1,800조 원에 달하는 가계 부채 규모도 걱정스럽지만 누구나 돈을 빌려 ‘투자 놀음’에 빠지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암호화폐든 마찬가지다. 과도한 투자 열풍은 가계 부채 폭탄으로 돌아와 우리 경제에 심각한 피해를 안길 수 있다. 하지만 가계 부채를 잡기 위한 대출 규제는 실수요자의 혼란만 초래할 뿐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부동산 가격 급등은 저금리나 풍부한 유동성의 영향도 있지만 주택 공급 부족과 과세 제도 등 정책 탓이 크기 때문이다.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 대출, 주식 ‘빚투(빚 내서 투자)’의 원인을 없애면 가계 대출 증가 문제는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다.
-앞으로 추가 금리 인상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이번에 금리를 올린 데는 추석 이전에 물가를 확실하게 잡아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정치권의 공감대가 깔려 있다고 본다. 부동산 가격을 잡는 것도 대선 승패의 관건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금리를 올리더라도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설령 금리를 0.5~0.75%포인트씩 올린다고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금리가 아니라 세금이다. 집값을 잡으려고 내놓은 정책 헛발질이 역풍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지금은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 임대차 3법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무리한 대출 규제로 서민을 고통에 몰아넣지 말고 잘못된 주택 정책부터 원상 복구하는 게 올바른 해법이다.
-코로나19까지 겹쳐 정책 당국의 고민도 깊을 듯하다.
△일단 물가는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당국의 예상치인 4%대는 어렵겠지만 3.5~3.8% 수준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과도한 투기나 급격한 자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불안을 해소하려면 미국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좀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방만한 재정 운용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데.
△재정 확대는 일정 부분 불가피하지만 코로나19 피해 계층에 대한 핀셋 지원이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무작정 재정 규모를 늘리기보다 지속 가능하고 효율적인 지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은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예산이 너무 많다. 현금 뿌리기로 일관하는 청년 지원도 잘못된 방향이다. 문제는 청년이 아니라 3040세대다. 경제의 허리를 담당하는 이들의 일자리가 계속 사라지고 있다. 청년들의 표를 의식해 이런저런 지원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한번 돌아선 청년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효율적인 재정 집행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나.
△기술 훈련을 위주로 교육 분야에 집중 투입돼야 한다. 실업 상태이거나 놀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외 견학 프로그램이라도 가동해 재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외국의 성공 사례라도 직접 둘러본다면 견문을 넓히고 근로 의욕까지 높일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보기술(IT)이나 디지털 관련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 3040세대 인력에 걸맞은 소양을 길러 사회 전반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려야 한다.
-정부는 일자리를 늘린다며 ‘한국판 뉴딜’ 사업에 나서고 있는데.
△뉴딜 사업은 펀드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 관 주도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두가 정부 돈을 남보다 앞서 따내느라 혈안이 돼 있다. 시중에는 정책 자금을 받지 못하면 바보라는 얘기까지 나돈다. 일선 부처 역시 배정된 예산을 쓰지 못하면 바보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니 중간에서 브로커들이 정부 자금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챙기는 것 아니겠는가. 중구난방식으로 자급 집행이 이뤄져 기업들끼리 ‘세금 따먹기’로 흘러가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현 정부 들어 갖가지 규제 사슬로 기업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데.
△경제정책은 철저히 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선도 기업들은 정부에서 특별히 지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한다. K팝도 가만히 놓아두니 세계 시장에서 맹활약하지 않나. 불필요한 규제로 기업의 발목을 잡지 말고 기업이 돈을 벌어도 배 아파하지 말라는 얘기다. 기업인들을 만나보면 수십 년간 고용을 창출하고 세금도 많이 냈는데 정부에 떳떳하게 얘기하지도 못한다며 한탄한다. 불공정하게 기업에 특혜를 줘서도 안 되지만 기업을 윽박지르는 것이야말로 정당하지 못한 처사다.
-정부의 자영업 지원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다.
△자영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는 한마디로 홀대 그 자체다. 지원 자금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방향을 놓고서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선 코로나19에 따른 피해 규모부터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성장률이 2019년 2%에서 2020년 -1%로 곤두박질쳤다. 성장률이 3%포인트 떨어졌으니 부가가치로는 60조 원, 매출로는 최소 200조 원이 날아간 셈이다. 이 피해가 대부분 소상공인·자영업자에 집중돼 있다. 자영업자들은 대한민국 경제 현장에서 가장 비참한 처지에 있는 계층이다. 이름만 사장일 뿐 오히려 근로자보다 더 열악한 처지다. 벼랑에 선 자영업자들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도움이 절실한 때다.
-우리 경제의 최대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근로자들 사이에 기업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게 문제다. 기업에 몸담고 월급을 받으면서도 ‘빨아먹을 대로 빨아먹겠다’는 행태를 보인다. 기업이라는 나무가 말라죽어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회사가 살아야 내가 산다는 공생 의식이 없다. 이러니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일자리가 줄어들게 마련이다. 산업 현장과 괴리된 교육 과정도 큰 문제다. 대학을 졸업해도 현장에서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기술계 고등학교를 나오면 세계 어디를 가도 자신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인력 양성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평가한다면.
△현 정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소득 주도 성장 등 위험한 정책 실험을 펼치고 있다. 수요와 공급 곡선마저 무시한 채 가격을 억누르는 것을 보면 한심하기 짝이 없다. 매사 찍어 누르면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현 정부의 반(反)시장 정책은 집값 폭등과 일자리 쇼크, 양극화 심화를 낳고 말았다. 소주성이 경제 전반에 걸쳐 총체적 실패를 초래했다. 지금 우리 경제는 운전자도 없거니와 엔진도 시원찮고 바퀴의 바람까지 다 빠진 상태다. 이런데도 나라가 굴러가는 게 신통할 정도다.
-정책 당국의 무책임한 자세도 문제점으로 지적되는데.
△정치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정부 관료들이라도 중심을 잡고 단호히 ‘노(NO)’라고 외쳐야 한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과거에 내놓았던 정책을 그대로 베끼는 사례가 너무 많다. 창의적인 정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불쑥 던져놓기만 할 뿐 문제점이나 성과를 꼼꼼하게 점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정책 이름만 그럴싸하게 지어 국민의 눈과 귀를 속이고 있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경제 공약이 쏟아지고 있는데.
△국민은 정치인들에게 경제 전문가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게다가 지금은 한 사람의 지식만으로 나라가 돌아갈 만큼 경제구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치인에게 필요한 덕목은 나라 경제를 높은 곳에서 길게 내다보는 남다른 안목이다. 이 시대의 정치 지도자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의문이다. 부동산 문제 해결에는 왕도가 없다. 주택 공급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가장 확실한 것은 규제와 세금 문제다. 이번 대선에서 양도소득세나 종합부동산세·취득세 등 세금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당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선거 쟁점은 자영업자를 위한 대책이다. 코로나19 사태를 대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이라고 본다면 특단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 독일처럼 정부가 나서 임대료 부담을 큰 폭으로 덜어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볼 만하다.
-우리 경제의 활로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우리가 탄탄한 선진국형 경제로 진입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노조에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바로잡아 노사 상생 문화를 정착시켜야 한다. 미조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를 키워 민주노총·한국노총의 영향력을 떨어뜨려야 한다. 특권층의 기득권을 없애야 ‘귀족노조’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자립 기반을 구축해주는 다양한 프로그램도 필요하다. 예컨대 정부가 유통회사를 설립해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에게 관련 자재를 빌려주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다. 이들에게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힘을 키워줘야 하다. 우리 청년들을 미래 전략산업에 적합한 인재로 키울 수 있도록 교육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He is…
1953년 대구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미국 UCLA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은행 조사 제1부 전문연구위원과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장을 거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국가미래연구원 이사와 금융감독원 자문교수단, 금융소비자보호 분과위원장 등으로 일했다. 현재 숙명여대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 ‘퍼펙트스톰이 다가오고 있다’ ‘외천본민’ ‘20억의 국난과 40억의 극복’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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