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식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
지난 10년처럼 시민사회가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시기가 또 있을까. 대한민국 시민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던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재직 기간 내내 협치 시정을 표방했다. 그리고 그 협치의 핵심 파트너는 그의 친정인 시민 단체였다. 박 전 시장은 그들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바탕으로 민간 위탁·보조금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위임했고 이렇게 시의 지원을 받은 특정 단체들은 박 전 시장의 전폭적인 신뢰와 협치라는 시정 철학 아래 행정의 손과 발로 역할해왔다.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복귀한 오세훈 시장은 지난 10년의 ‘민관 협치’에 대한 실상을 재점검했다. 특혜성 특정 민간 위탁·보조금 사업에 대해 대상 선정과 예산 집행 과정의 불공정·불합리의 실태를 공개했다. 재정 혁신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집행했던 예산도 삭감했다. 특정 단체에 의해 사유화된 서울을 바로잡겠다는 취지다.
오 시장의 조치에 대해 시민 단체들은 “민관 협력을 통한 사회문제 해결과 공동체의 발전이라는 전 지구적 거버넌스 흐름을 전면 부정하는 심각한 퇴행”이라며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10년 만에 날아든 오 시장의 창에 방어막을 치며 반격한 것이다. 서울시의 예산 삭감은 민간 협치의 몰이해에서 비롯된 구시대적 발상이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근본으로 돌아가서 시민 단체의 탄생과 역할부터 되돌아보고자 한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설익은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고 혼탁한 한국 정치의 정화제가 되겠다는 것이 1세대 시민 단체의 목표였다. 정경유착의 검은돈이 횡행하던 정치와 달리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회비로 투명하게 운영되는 시민 단체는 시민의 절대적 신뢰를 무기로 부흥기를 맞는다. 투명성과 독립성은 대한민국 시민 단체를 지탱하는 뿌리였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현실 정치와 일정한 거리와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했던 시민 단체가 공공 권력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시민 단체 인사가 대거 늘어난 것은 물론이고 시민 단체 재정에 공공 지원 비율도 확대됐다.
박 전 시장 재임 시절에는 1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서울시의 일부 민간위탁·보조금 단체에 집중 지원됐다. 시민 단체와 공공의 결탁은 문재인 정부에도 이어졌다. 초기 문재인 정부의 차관급 이상 인사 중 다수가 시민 단체 출신으로 채워졌을 정도다. 권력의 감시자로 출발한 시민 단체가 권력의 최측근 자리에서 또 다른 거대 정치권력이자 이익집단으로 변질된 것이다. 재정적으로 공공에 예속되고 정치와 유착 관계를 유지한 시민 단체가 제대로 된 비판과 견제를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최근에는 일부 시민 단체가 서울시의 시민 참여 예산 축소를 이유로 들어 마치 예산집행 권한이 시민 단체에 있는 것처럼 대의민주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공공의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할 권한은 행정부에 있다. 그동안 지원을 해왔으니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는 논리는 한 번 잡은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한 억지에 불과하다.
시민사회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시민 참여와 협치라는 명분이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문제는 과감히 도려내는 미래지향적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시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촉발된 이번 논쟁이 건강한 시민사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고 그 순기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이야말로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다수 시민 단체의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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