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현장 근로자 헬맷 안써도 단속 힘든데"…'처벌 1호' 될까 노심초사

[두 얼굴의 중대재해법]

<상> 발등에 불 떨어진 기업

대기업은 수백~수천억 예산 투입

안전조직 키우고 시설보완 동분서주

자금 없고 인력난 겪는 中企는 막막

하청 근로감독·법률자문 엄두못내

인력 등 모호한 기준도 어려움 키워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2일 경기도 법무연수원 용인분원에서 열린 중대재해·안전사고 수사검사 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1. 중대재해가 매년 20건 넘게 발생했던 제조업체 A사는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한 후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중대재해법 대비를 위한 안전 예산만 710억 원으로 늘려 잡았다. 상시 근로자가 3,000명인 대규모 사업장이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경영난을 겪은 만큼 710억 원의 안전 예산은 상당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노후한 안전장치를 교체하고 사고예방감시단 278명을 구성하지 않으면 중대재해에 따른 처벌을 피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 2. 건설업체 B사는 10년 전 2건의 중대재해가 발생한 탓에 중대재해법 시행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고안전책임자를 선임하고 산하에 3개팀(28명)을 뒀다. 113곳의 현장에 투입한 안전관리자는 316명, 보건관리자는 78명에 달한다. 공공기관인 국가철도공단은 지난 9월 중대재해처벌 대응 컨설팅을 위해 대형 법무법인 C사와 용역 계약을 했다. 10월부터 내년 6월까지 컨설팅하는 데 쓴 비용은 2억 1,000만 원이나 된다.

중대재해법을 앞두고 기업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와 재정 여력에 따라 준비 상황은 천차만별이라 걱정과 우려는 여전하다. 대기업에 비해 예산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 사이에서는 “중대재해처벌 1호 기업이 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며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요행만 바란다는 체념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철강·건설·조선업종은 안전 체계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질식 사고로 근로자 2명이 목숨을 잃어 올 5월 고용노동부 감독을 받은 고려아연은 안전 관리에 3,500억 원을 추가로 투자하기로 했다. 안전 전담 인력을 28명에서 108명으로 확대한다. 고려아연은 최근 5년간 9명의 근로자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현대건설은 300명 규모의 안전관리본부를 신설했고 현대중공업도 안전 부문 인력을 종전보다 20% 이상 늘렸다. 삼성물산의 경우 드론과 같은 기술을 이용해 위험한 작업에 대한 위험도 줄인다.



우려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이 같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중대재해법을 담당하는 고용부 내에서도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 걱정’ ‘중대재해 사건 1호는 중소기업에서 나올 것 같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대기업의 안전 체계는 꽤 이뤄진 것 같은데 문제는 중소기업”이라며 “근로자 100~200인 사업장 5곳에 대해 현장 점검을 했는데 4곳이나 준비가 거의 안 됐다”고 말했다. 대기업처럼 로펌 등을 통해 법률 자문을 받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기업계의 한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을 만나보면 안전 관리 인력을 대기업이 거의 흡수하다시피하고 있다고 답답해 한다”며 “법조계에서는 중대재해로 큰 장이 들어섰다고 한다던데 우리와는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더 큰 우려는 안전 관리 체계 외형을 만들어도 운영하는 데 중소기업의 어려움이 더 크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소규모 건설 현장이다. 이런 현장은 속성상 하청업체에 부분 작업을 맡기기 때문에 원청이 하청 근로자에 대한 엄격한 근무 감독이 쉽지 않다. 게다가 공사 기간을 단축해 비용을 절감하라는 압박을 받는 소규모 업체는 기본적인 안전교육도 건너뛰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이렇게 일해도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식의 안전 불감증이 퍼져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안전사고를 줄이기 위한 조치인 근로 감독 강화는 늘 인권침해의 벽을 넘지 못한다. 한 근로감독관은 “현장을 나가보면 헬맷조차 안 쓰고 일하는 근로자가 너무 많다”며 “추락 위험이 있는 곳이라도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싶은 사업주들이 많지만 대부분 노동조합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기업들의 가장 큰 답답함은 모호한 법과 이에 따른 정부 방침이다. 정부는 사업장별로 위험 요인이 다르기 때문에 법에서 일률적인 안전 체계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안전 인증처럼 일정한 기준 충족에 익숙했던 기업들은 막막해한다.

예를 들어 중대재해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전담 조직의 구성원은 2명 이상으로만 정하고 재해를 막기에 합리적인 인원으로 구성하라고 규정했다. 재해 예방에 필요한 예산을 얼마나 들여야 하는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위험 요인에 대한 점검을 어느 수준으로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는지를 전부 기업 자율에 맡겼다.

고용부는 기업이 스스로 안전 체계를 만들지 못하면 중대재해가 줄어들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산재 사망자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매년 1,100명대를 기록했다. 2014년 들어 900명대로 떨어졌고 2019년에는 800명대로 낮아졌다. 올해 11월 말 기준 산재 사망자는 79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명 줄었다. 고용부의 한 관계자는 “기업의 안전 체계는 페이퍼와 인증으로 만들어지 않는다”며 “왜 중대재해가 일어나는지 가장 잘 아는 산업 현장에서 노사가 함께 일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