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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포퓰리즘과 혐오의 대화

◆박태준 생활산업부장

'필터 버블'에 갇혀 버린 사람들

타협 소멸되고 사회는 파편화돼

포퓰리즘 정치, 오히려 갈등 조장

'인류의 종말' 같은 재앙 우려해야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상당한 위험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최근에 식사를 함께한 지인은 “자꾸 깊은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인데, 그래도 되돌아 나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른 지인도 “휴대폰에 수시로 알림이 뜨는데 보지 않으려 해도 눈길이 간다”며 “중독된 거 같다”고 털어놨다.

네트워크 기술의 진보와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의 개인화가 몰고 올 부작용에 대한 경고는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계속됐다. 이용자의 성향을 간파한 알고리즘이 그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제공해 사람들은 본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힌다는 엘리 프레이저의 경고가 나온 게 2011년이다.

나와 다른 타인의 견해를 통해 시야를 넓히고 통찰을 얻을 수 있음을 잊은 지 오래다. 내 주장의 근거가 다소 부족해도 목소리를 높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클릭 몇 번에 나에게 힘을 실어줄 수많은 동지들과 유튜버, 심지어 가짜 뉴스도 확보할 수 있다. 주류에서 소외돼 외로웠던 소수들도 이제는 침묵하지 않는다. 소수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벗을 만나 큰 무리를 이룬다. 상호 이해와 통합은 고사하고 절충이나 타협조차 기대할 수 없는 사회는 분극화를 넘어 파편화돼 간다.

팬데믹을 거치면서 비대면이 일상이 된 세계에서는 그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간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벽을 높이는 진영의 이편과 저편에서 정치가 작동하고 있다. 그들은 세력을 키우고 공고히 하는 데 편 가르기와 분열이 더 없는 자양분임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정치인들의 SNS와 유튜브 활용이 날이 갈수록 정교해지는 이유다. 그렇게 온라인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에 버블 속에 갇힌 유권자들이 감동하며 퍼나르기에도 헌신한다.

교활해지는 정치는 화합과 관용을 용납하지 않는다.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자신만이 국민을 대표하며 오로지 자신만이 그럴 능력이 있다고 외치면서 국민 사이의 반목을 조장하는 정치인이 포퓰리스트”(2021, 고립의 시대) 라고 정의했다. 가디언이 영국 최고의 지성이라고 평가한 그는 또 “포퓰리즘이 분열과 불신과 혐오의 대화를 일상화시킨 것이 최근 수년간 대두된 가장 큰 위험”이라고 경고한다.

유례없는 비호감 대선을 50여 일 앞두고 모든 후보들이 통합을 외치지만 공허하다. 극단의 포퓰리즘만이 아무런 여과 없이 쏟아져 나온다. 내 편과 네 편에 익숙해진 국민들 역시 검증 없이 팬덤에만 의존해 후보들을 바라본다. 결국 승부에서 패한 후보 진영은 아마도 새로운 ‘적폐’가 될 것이다. 그렇게 3월 9일 이후 대한민국은 또 얼마나 갈라지게 될까. 그룹 총수의 ‘멸공’ SNS에 소비자들도 둘로 나뉘어 싸우는 세상이다.

포퓰리즘 대마왕 격인 트럼프 탓인지 미국도 지긋지긋한가 보다. 넷플릭스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을 보면 알 수 있다.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와 제니퍼 로런스가 주연인 이 영화는 정치가 조장하는 분열과 갈등에 휘둘리면 인류의 종말과 같은 재앙을 맞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제 우리는 SNS와 유튜브와 가짜 뉴스를 멈추고 광장으로 나와 거리를 좁히고 ‘룩 업(Look up)’ 해야 한다. 지금 지구를 향해 혜성이 날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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