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외국인의 미국 기업 인수를 승인할 때 국가 안보와 첨단기술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더 면밀히 검토하기로 했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평가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기업의 대미투자에도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5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공급망 및 핵심 기술 보호를 위해 외국인 투자를 국가 안보 차원에서 철저히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세부적으로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가 외국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핵심 공급망 ▲첨단기술 ▲투자 동향 ▲사이버보안 ▲미국인의 개인 정보 보호 등 5가지 요인을 고려하라는 지침을 담았다. 백악관은 "미국 안보를 저해하려는 국가와 개인의 행태를 비롯한 국가 안보 환경이 진화함에 따라 CFIUS의 심사 절차도 진화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기업 인수합병(M&A) 등 대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해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이 그 문제를 해소한다는 조건으로 승인하거나 거래 자체를 불허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때 중국이 미국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첨단기술을 손쉽게 확보한다는 판단에 따라 CFIUS를 통해 중국의 미국기업 인수 여러 건을 좌절시켰다. NYT는 “새로운 행정명령은 CFIUS가 미국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기술에 대한 M&A 심사에 집중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제성장의 필수적인 기술 목록으로 백악관은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공지능(AI), 바이오기술, 바이오제조, 퀀텀컴퓨팅, 청정에너지, 기후변화기술 등을 열거했다.
이번 행정명령도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조치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미국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에도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행정명령에서 중국인의 미국기업 인수만 콕 집어 언급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위반 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CFIUS의 심사 대상을 모든 거래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은 "미국은 공급망을 견고하게 하는 데 있어서 동맹·파트너와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특정 외국인투자는 미국을 미래 공급망 차질에 취약하게 만들어 공급망 강화 노력과 국가 안보를 저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기업이 첨단기술을 보유한 미국기업을 인수하려는 경우에도 CFIUS는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더 까다롭게 심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CFIUS가 한국기업의 미국 기업 인수를 심사할 때 해당 한국기업의 중국사업 등 중국과의 관계를 세밀하고 주의 깊게 파고들 수도 있다. 실제로 행정명령에는 외국인과 '제3자와의 관계'(third-party ties)도 고려하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CFIUS가 발간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작년에 핵심기술 거래 총 184건을 심사했는데 국가별로 보면 독일(16건), 영국(16건), 일본(15건), 한국(13건) 등으로 한국이 네번째로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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