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대 빅딜이 될 메디트(3차원 구강 스캐너 전문 기업) 매각을 놓고 세계 3대 사모펀드인 미국 블랙스톤과 KKR·칼라일이 재격돌하게 됐다. 당초 메디트의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유니슨캐피털은 칼라일을 메디트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했으나 가격 협상이 불발돼 메디트에 눈독을 들여온 블랙스톤과 KKR이 다시 인수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후 독재 정치의 폐해가 커지는 중국에 등을 돌려온 미국의 대자본들이 한국에서 대형 투자 기회를 적극 모색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유니슨캐피털과 메디트 매각 주관사인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지난달 말 칼라일·GS(078930) 컨소시엄에 우선협상자 지위가 종료했음을 알리고 다른 인수 후보들과 개별 협상에 돌입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칼라일의 우선권이 사라진 만큼 메디트 인수에 관심을 나타낸 모든 후보가 동등한 입장에서 인수 가격 등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니슨캐피털 측은 연말까지 주식 매매계약을 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실시한 매각 본입찰에는 블랙스톤과 KKR·칼라일이 참여했고 CVC캐피탈과 SK텔레콤,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인 스트라우만이 관심을 보였으나 지금은 자금력이 있는 세계 3대 사모펀드(PEF)만 인수 후보로 남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칼라일도 유니슨 측의 요구 사항을 충족하면 다시 메디트 인수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모두 미국계인 3대 PEF는 킹달러의 수혜를 입어 국내 기업 및 사모펀드보다 자금 동원에 유리하다. 특히 이들은 아시아 투자의 경우 그간 중국과 인도에 치우쳐 있었는데 최근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시진핑 1인 체제 강화로 중국의 투자 매력이 급속히 떨어지자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안정적 투자처로 꼽히는 한국에 주목하고 있다. 아울러 메디트가 해외 시장에서 성장성이 높다는 점도 글로벌 PEF들이 관심을 쏟는 대목이다.
앞서 칼라일 컨소시엄은 메디트 인수가로 약 3조 원을 제시해 KKR보다 3000억 원 이상 가격 차이를 벌이며 우선협상자 지위를 확보했다. 칼라일은 아시아 펀드를 통해 1조 7000억 원을 투입하고 GS그룹이 3000억 원의 지분 투자금을 부담하는 한편 KB은행과 KB증권 등이 1조 원의 인수 금융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인수 구조를 짰다. 칼라일 측은 KKR보다 너무 높은 가격을 제시했다는 지적에 인수가를 뒤늦게 낮추려 했으나 실패한 것으로 관측된다. 칼라일은 이규성 대표가 사임한 후 골드만삭스 출신으로 아시아 투자를 총괄하는 김종윤 한국 대표가 유니슨 측과 인연을 앞세워 이번 인수전을 총괄해왔다.
투자 업계는 칼라일의 빈자리를 세계 최대 사모펀드로 올 해 4월 한국 법인을 설립하며 적극적인 투자 의사를 밝혀온 블랙스톤이 채울지 우선 지켜보는 분위기다. 블랙스톤은 하영구 전 은행연합회장을 한국 법인 회장으로 영입하며 사모펀드 투자를 담당해온 국유진 대표의 부족한 국내 네트워크를 보강했다. 블랙스톤은 최근 국내 바이아웃 투자 실적이 저조해 메디트 인수를 놓고 깊이 있는 스터디를 지속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스톤은 2019년 국내 최대 의약품 물류그룹 지오영에 1조 1000억 원을 투자한 바 있다.
메디트 인수를 두 차례나 시도했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신 KKR 역시 막판에 회생한 기회를 살릴지 관심이다. KKR은 2017년 의료 정보 플랫폼인 웹엠디를 3조 원에, 2018년 엔비전헬스케어를 6조 원에 각각 인수하는 등 헬스케어 투자에 적극적이다. 2009년부터 KKR 한국 법인을 이끌고 있는 박정호 대표가 메디트 인수전을 주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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