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우리는 '기적' 이룬 상위 0.0001% 예술가죠"

■'국내 첫 발달장애인 극단' 라하프 이끄는 김재은 단장

발달장애인 부모들과 6년 전 설립

하루 6시간 이상씩 춤·노래 연습

기존작품 아닌 창작뮤지컬만 고집

단원들 "희망 줄 수 있어 기쁘다"

김재은(앞줄 왼쪽 두 번째) 라하프 단장과 박동선(〃 세 번째) 이사장이 뮤지컬 배우, 감독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아이 윌 팔로 힘~ 팔로 힘 웨어에버 히 메이 고~(I will follow him~ Follow him wherever he may go~).” 서울 상수동에 위치한 건물 5층 사무실 앞. 들어서기 전부터 영화 ‘시스터 액트’의 유명한 주제곡이 흘러나왔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6명의 20~30대 발달장애인 청년들. 과연 이들에게 장애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잘 부른다.

6명의 청년들은 국내 최초로 결성된 발달장애인 극단 사단법인 ‘라하프’ 소속 단원들이다. 2016년 활동을 시작한 라하프는 20세 이상 발달장애인 단원을 모집해 매년 창작 뮤지컬을 제작하고 시연한다. 아이를 찾아 떠나는 아빠를 통해 아이와 가족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드리머스’, 발달장애인 이야기를 전하는 ‘더 보이스’ 등이 대표적이다. 설립 주역은 이들을 자녀로 둔 부모들로 라하프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김재은 단장도 수석 배우인 이한길 단원의 어머니다.

주요 활동으로 뮤지컬을 택한 것은 간절함 때문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됩니다. 반면 학교를 다니거나 직장에 다니면 괜찮아지지만 그러기 힘든 게 현실입니다. 직장에 다니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그중 가장 아이들이 뜨겁게 반응한 것이 뮤지컬이었죠.” 김 단장의 설명이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석 배우인 한소라 씨는 말이 거의 없어 주변에서 벙어리라고 놀릴 정도였다. 김 단장 역시 그와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자신의 주관과 생각을 뚜렷하게 말한다. 공연을 통해 표현하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생긴 효과다. 뮤지컬 같은 예술이 이들과 소통하는 훨씬 더 효과적인 수단임을 입증한 셈이다.

라하프 뮤지컬 배우들이 서울 상수동 사무실에서 김성혜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드리머스'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뮤지컬에 대한 단원들의 열정은 대단하다. 매일 아침 10시 사무실에 모여 저녁 6시나 7시까지 연습한다. 한 번에 10~15분 이상 집중하기 힘든 이들이 하루 6시간 이상 춤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한다. 성취감 역시 상당하다. 한 씨는 “뮤지컬이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좋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게 다 이뤄진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인턴 배우인 김나연 씨도 “뮤지컬을 통해 나를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 마음에 든다”며 “이제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덧붙였다.

라하프는 창작 뮤지컬을 고집한다. 기존 작품은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활동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단장은 “발달장애인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들이 교육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건강하게 키우면 행복하게 자랄 수 있으니 포기하지 말고 계속 노력하자는 말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라하프 단원들의 수준이 유명 뮤지컬 배우와 비교할 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발성기관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한 신체적 한계 탓이다. 이들을 일반 배우와 동일한 잣대에 놓을 수 없고 예술 세계나 방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함부로 평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단원들의 수준이 결코 낮은 것은 아니다. 김 단장은 “이들은 발달장애인 중 0.0001% 안에 드는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며 “대학생들과 같이 공연했을 때 누가 단원이고 누가 비장애인 배우인지 모를 정도”라고 강조했다.

주변의 든든한 지원도 한몫했다. 현재 뮤지컬 극단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 숫자가 단원보다 많은 10명이나 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법인이 처음 시작할 때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 14명이 참여했지만 지금은 2명만 남았다. 2기 참여자들도 마찬가지. 법인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내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탓이다. 코로나19가 터진 후에는 공연과 교육 사업, 광고 등 수익 사업에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김 단장은 “지금 가장 큰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공연을 잘해서 수익을 낼 것인가 하는 출구 전략”이라며 “내년에는 경영이 정상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