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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하러 가자" 장애인 성폭행 '징역4년→무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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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장애를 가진 성폭력 피해자가 이른바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상태라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장애인 준강간죄'를 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3일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 준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81)씨의 상고심에서 원심의 무죄 판결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A씨는 2018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피해자 B(48·지적장애 3급)씨를 이듬해 2월 한 달 동안 다섯 차례 성폭행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범행 때마다 "우리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는 말로 B씨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간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1심은 성폭력처벌법 6조 4항의 장애인 준강간 죄를 적용해 A씨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신체적·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다는 점을 이용해 저지른 성폭행을 처벌하는 규정이다.

장애인 대상 강간죄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 기본 형량이어서 일반 형법상 강간죄(3년 이상의 유기징역)보다 처벌이 훨씬 무겁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 등을 고려해 형량을 정했다.

2심은 무죄로 판단했다. 사건 당시 B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였다는 이유에서다.

2심 재판부는 정신적인 장애가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을 뿐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정신장애'를 의미한다고 전제하면서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지적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일반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과 지적장애 3급은 지능지수 50∼70으로 교육을 통한 재활이 가능하다는 점, '싫어하는 것'에 적극적인 거부 표현을 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두 사람이 여러 차례 함께 식사하는 등 친분이나 호감도 있었다고 봤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2심의 해석이 잘못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성폭력처벌법에서 '신체적·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음'이라 함은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곤란 상태에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장애가 주 원인이 돼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한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피해자의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인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와 주변 상황·환경, 가해자의 행위 방식, 피해자의 인식·반응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기준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사건 당시의 조건 전반을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덧붙여 피해자 B씨의 상황에 관해서도 한글·숫자 개념이 부족하고 대인관계와 의사소통 능력이 특히 낮다고 봤다.

대법원에 따르면 B씨는 세 번째 범행을 당한 뒤 인근 식당 주인을 찾아가 울면서 "또 가자고 하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식당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이후에도 B씨는 A씨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대법원은 이를 '정신적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곤란 상태'라고 봤다.

다만 대법원은 가해자 A씨가 무죄라는 결론은 뒤집지 않았다. 두 사람의 평소 관계를 볼 때 A씨가 B씨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이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B씨를 만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이나 먹을 것을 주는 등 알고 지냈고, 집을 청소해달라며 데려가 성폭행한 뒤 먹을 것이나 돈을 준 사실을 알 수 있다"면서 "A씨로서는 B씨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번 판결과 관련, 대법원 관계자는 "성폭력처벌법상 정신적인 장애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로 제한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 하급심의 혼란을 해소했다"며 "향후 유사 사건의 판단에 지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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