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사는 최석화(28)씨는 지난해 1월 300만원으로 가상 화폐를 사 재미를 본 뒤 투자금을 늘렸습니다. 예금 통장에 넣어둔 3000만원에 마이너스 통장까지 열어 800만 원까지 더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이 고꾸라지면서 최씨가 지금 손에 쥔 투자금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습니다. 최 씨는 “직장 동료들이 가상 화폐로 큰 돈 버는 것을 보고 뒤늦게 뛰어들다 이렇게 됐다”면서 “언젠가 반등하지 않겠나 싶어 움켜쥐고 있다가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습니다.
올해 가구마다 짊어진 부채가 9000만 원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특히 최씨처럼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이나 부동산을 사는 젊은 층이 늘면서 20대의 대출은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3일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전체 가구당 평균 부채는 9170만 원으로 전년 대비 4.2% 증가했습니다. 가구당 평균 부채가 9000만 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가계금융복지조사는 2만여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매년 한 차례씩 이뤄집니다.
우려스러운 대목은 29세 이하 가구주의 평균 부채는 5014만 원으로 전년 대비 41.2% 늘어난 점입니다. 전체 평균 부채 증가율에 견주면 20대 빚이 열 배는 더 가파르게 늘어난 것입니다. 20대 다음으로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른 50대(6.8%)와 비교해도 차이가 큽니다.
20대 부채가 급증한 것은 ‘빚투(빚내서 투자)’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많이 샀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실제 청년 부채의 대부분은 은행에서 빚을 끌어온 금융 부채(4577만 원)로 지난해보다 35.4% 늘었습니다. 임대보증금은 437만 원으로 증가율이 158.6%에 달했다. 임경은 통계청 복지통계과장은 “29세 이하의 경우 금융 부채를 얻어서 전세 등 보증금을 끼고 집을 매매한 몇 가구가 발견됐다”며 “이러한 특성이 증가율에 반영됐다”고 말했습니다.
부채가 늘면서 20대의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졌습니다. 29세 이하 가구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전년보다 7.9%포인트 늘어난 37.1%를 기록했습니다.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저축액 대비 금융 부채 비율은 한 해 전보다 62.5%포인트 급증한 197.9%를 기록했다. 은행에 빌린 돈이 예금해둔 돈의 두 배라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조사 시점인 3월 이후 여섯 차례 기준금리가 인상된 점을 감안하면 청년층이 느끼는 실제 부담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금리 상승 및 부동산 가격 하락세 지속 등으로 현재 체감하는 경기 상황과 조사 결과가 상이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격차는 더 벌어졌습니다.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96배로 전년보다 0.11배 포인트 증가했습니다. 5분위 배율은 소득 상위 20% 가구와 하위 20% 가구를 비교한 지표로 값이 클수록 불평등이 커졌다는 뜻입니다. 소득 불균형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도 같은 기간 0.331에서 0.333으로 악화했습니다. 지난해 저소득층에 지급된 코로나19 지원금이 다소 줄어든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임 과장은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지원금이 저소득층 추가 지원에 많이 이뤄졌는데 올해는 소상공인이나 소기업 중심으로 지원 대상이 변경돼 저소득층 지원이 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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